[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39)]귀인이 당신을 도우니…
비가 순하고 바람이 고르니 백가지 곡식이 풍요롭다. 황룡이 여의주를 얻어 천하를 희롱하니 필시 혼인의 경사가 있다. 상하가 화목하니 집안이 모두 편안하며, 오랫동안 기다리던 자녀를 얻게 된다.(1월) 뜻밖에 귀인이 당신을 도우니,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된다. 뒷동산의 복숭아, 오얏나무가 봄을 만나 찬란하게 피는 격으로 필시 집안에 자손의 경사가 있다.(11월)
설이 지나면 한해의 운수를 점쳐보는 것이 관행이었다. 가장 많이 사용했던 것은 <토정비결(土亭秘訣)>이었다. 필자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장에서 <토정비결>을 사오면 1월부터 12월까지의 운세를 또박또박 읽었다. 대부분 내용이 ‘여름에는 물을 조심하고 겨울에는 불을 조심하라’는 뻔한 이야기였지만 어린 마음에는 금석문처럼 박혔다.
<토정비결>은 조선 중기 학자인 토정 이지함이 썼다고 알려졌지만, 학계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지함이 죽고 나서 이 책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토정비결>은 민중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백성들은 <토정비결>을 통해 고단한 삶을 위로받았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꿨다. 내용의 70% 이상이 행운의 괘로 구성돼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 책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토정비결>은 ‘사주팔자(四柱八字)’를 토대로 이뤄져 있다. 사주(四柱)는 출생의 연(年), 월(月), 일(日), 시(時) 네가지 기둥을 의미하며, 팔자(八字)는 연월일시 각각을 천간지지(天干地支:간지)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사주팔자로 운세를 짚는다는 것은 이런 사주와 간지의 조합을 생각하면서 운세를 풀이한다는 것을 말한다. 간지는 ‘육십갑자’로도 일컫는데, 이는 10간과 12지가 60을 주기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출생후 60년의 세월이 지나가면 다시 육십갑자가 시작되는데 이 때가 바로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다.
옛날에는 날짜나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갑자, 을축…” 하고 짚었는데, 이에 익숙하지 않으면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육갑 떤다’ ‘육갑하네’같은 표현이 나왔다.
올해도 <토정비결>을 비롯한 각종 예언과 점괘가 컴퓨터마다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가 작동하는 이 시대에 예언, 점괘라니? 믿기 어렵겠지만 일본의 어느 슈퍼컴퓨터에는 붉은 색의 부적이 붙어 있다고 한다. ‘제발 별 탈 없이 가동되길 바라옵니다’라고. 세상이 불안하니 <토정비결>의 인기가 더 높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