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법원의 신속한 대응과 사법적극주의의 신호

2022-02-09     경상일보

2022학년도 수능시험 생명과학 문제 중 오답 논란이 있었다. 채점을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오답을 인정하지 않자, 응시자들이 평가원장을 상대로 정답결정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소제기 하루 만에 일단 정답결정처분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에 응시자들의 청구를 인용해 정답결정을 취소하는 판결을 했다. 이에 대해 평가원장은 항소를 포기하고, 사퇴를 했다.

필자는 법원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심리를 완료하고 자신감 있게 판결을 선고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위 사건에서 법원이 보여준 신속한 대응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일반국민들이 보건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방역패스 처분의 취소를 청구한 사건에서도, 필자는 놀랐다. 필자의 예상은 ‘보건당국이 질병이나 보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서 내린 방역패스처분에 대해, 법원이 무슨 수로 그 당·부당을 따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책적인 문제에 대해 법원은 여태까지 행정기관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해 왔기 때문에 방역패스 처분에 대해서도 보건당국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서울행정법원은, 방역패스처분의 취소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서 벌어진 집행정지 사건에서, 보건당국의 방역패스정책에 대해 공익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만 방역패스가 제한 없이 광범위하게 시행돼 생활 필수시설의 이용까지 합리적 이유 없이 제약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면, 백신미접종자들은 그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강제 받는 상황에 처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위 법원은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중증화율이 현저히 낮고 사망 사례가 없는 12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들을 방역패스 적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서울시 내 3000㎡ 이상 상점·마트·백화점에 적용한 방역패스 조치의 효력을 정지하고, 또 12~18세 청소년에 대해서는 17종의 시설 전부에 대해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했다.

필자가 놀란 또 다른 하나는, 지상파 방송3사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후보만을 초청해 양자TV토론을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양자TV토론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사건이었다. 필자의 예상은 ‘방송3사가 정부기관도 아니고 민간방송업체일 뿐인데, 방송3사가 누구를 초청해 토론을 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즉 법원이 가처분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서울서부지법은 1월26일 방송3사의 양자간의 TV토론을 금지하는 가처분결정을 했다. 그 사건에서 위 법원은, 공직선거법이 언론기관 주관 토론회의 경우 언론기관에게 폭넓은 재량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방송토론회는 매우 효율적이고도 중요한 선거운동이고, 유권자들로서도 각 후보자들을 비교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점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대상자 선정에 관한 언론기관의 재량에는 일정한 한계가 설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선후보지지도 여론조사의 결과 및 직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의 득표률 등을 감안해 국민의당 대선후보를 빼고, 양자간의 TV토론을 하는 것은 그 정당성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방송3사가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우리 사회의 분쟁에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적극주의와 소극주의가 있을 수 있다. 분쟁해결을 위해 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좋기야 하지만, 너무 적극적이면 자칫 법원의 정치화를 불러 사법부 독립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런 위험 때문에 우리 법원은 오랫동안 가능한 한 첨예한 갈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꺼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필자는 위와 같은 일련의 사건에서, 드디어 법원이 그 동안의 오랜 소극주의를 버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분쟁해결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보았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법원의 독립도 어느 정도 목표 달성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소극주의보다는 적극주의가 타당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법원이 보여준 적극주의의 신호는 대단히 반가운 것이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