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60)]부산 범어사 삼층석탑
금빛 물고기가 범천에서 내려와 마음껏 헤엄치는 곳 범어사. 일주문인 조계문 앞에 선다. 거칠게 다듬은 커다란 네 개의 돌기둥이 나란히 늘어선 이 건축물은 조형미가 뛰어난 걸작이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온갖 이분법의 분별을 떠나 부처의 경지로 들어선다는 불이문을 마주한다. 불이문 기둥에는 동산스님이 쓴 주련이 눈길을 끈다. ‘부처님의 광명은 밝고 밝아 만고에 빛나니, 이 문을 들어서면 안다는 생각을 가지지 말라.’ 안다는 생각, 헛된 지식을 버리고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불국토에 이르고 중후한 건물 대웅전이 모습을 나타낸다.
대웅전 마당에는 높이 4m의 아담한 삼층석탑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 물고기는 넓은 마당에 삼층석탑만 앉히기 허전하여 석등에 불도 밝히고 괘불대도 여기 저기 꾹꾹 찍어두었다. 그리고 대웅전 돌계단 소맷돌에는 연꽃도 장엄하였다.
보물 제250호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인 신라 흥덕왕 10년(835년)에 건립되었다.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물의 가치는 충분하다. 기단에 큼지막하게 새긴 코끼리 눈 모양인 안상이 도드라져 보인다. 불교에서 코끼리는 지혜를 통한 실천을 의미한다. 분별심을 버리고 지혜의 빛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햇볕을 등에 지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제루에선 입춘 기도법회가 열리는지 스님의 독경소리가 더 높다. 부처님을 향한 신도들의 신심이 봄을 활짝 열고 복 된 날을 기원한다.
대웅전을 뒤로하고 산길 30여 분을 걸어 문 없는 문을 통과해 원효암에 이른다. 그곳에도 신라말에 축조된 예쁜 삼층석탑 두 기가 있다. 금빛 물고기는 인적 없는 깊은 암자에도 쓱쓱 거침없이 탑을 쌓아 올렸다. 비록 크기도 작고 유약해 보이지만 원효대사의 설화를 후대까지 전할 소중한 문화재다. 범어(梵魚)가 아닌 범속(凡俗)한 물고기가 되어 노닐다 산길을 내려온다. 나뭇가지에 기댄 꽃눈이 입춘을 물고 있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