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설명책임
전제군주시대에는 국왕이 내린 명령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복종만이 있을 뿐이었다. 국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는 논리로 정당화되었다. 따라서 국왕 스스로 결정한 것에 대해 굳이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의회민주주의가 등장한 이후 권력의 원천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이 확립되었다.
절대왕정과 국민주권 시대의 차이는 무엇인가. 권력자가 명령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인 국민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우리는 TV에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미국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직접 국민들에게 주요 이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특별한 형식을 갖추어 기자들을 모아 놓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동 중에 기자들이 질문을 하면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정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런데 정작 우리 대통령이 직접 육성을 통해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소통하는 장면은 거의 볼 수가 없다. 대변인을 통하거나 서면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될 뿐이다.
국민들은 정부가 결정한 정책과 조치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다. 국정 담당자들은 이 궁금증을 해소해 줄 책임이 있다. 바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이다. 백신 공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왜 늦었는지, 우리 공무원이 해상에서 왜 북한에 피격되었는지, 원전은 친환경에너지 분류에서 왜 제외했는지 등 정부에 묻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정부는 일방적 해명과 방어에만 열중한다. 누구도 속 시원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충분한 설명이 없으면 세간에는 억측과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며 혹세무민의 온갖 설들이 퍼지면서 정부의 신뢰도만 하락하게 될 뿐이다.
설명책임은 결정의 배경과 경과, 정책의 영향 등을 단순히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명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허용하고, 이에 대응할 의무를 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설명책임 속에는 결정에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개선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책임까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설명책임을 이행하는 것은 주권재민의 책임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정책오류가 발생하였을 때,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부동산 가격이 급속히 상승하여 부동산 대란이 일어나도, 원전 안전성 평가를 조작하여 멀쩡한 원전을 정지시켜도 도대체 누구 책임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책임을 물을 수도 없으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오류가 계속 되풀이 된다. 모두 설명책임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무책임’의 현상이다.
설명책임의 이행은 당연히 정부의 투명성을 제고시킨다.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정보와 자료들을 모두 공개할 수밖에 없다. 결정과정의 참여자와 그들의 역할, 필요한 재원의 규모와 출처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며, 이를 통해 국민들이 정책의 과정과 영향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불리한 것은 감추고 생색내기 좋은 것만 선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또한 설명책임은 권한이 클수록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대통령은 대부분의 주요 국가정책에 대해 직접 국민들에게 설명책임을 지고 있다. 국정에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은 해당 부처의 장관이나 담당자를 질책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상황을 설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제시하며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국정책임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새 대통령은 설명책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으면 한다. 일방적인 지시나 통보 또는 보여주기식 소통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직접 소상히 설명하고 책임지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