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41)]홍매를 기다리며

2022-02-22     이재명 기자

우수(雨水)가 지났건만 한번 얼어붙은 땅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이 무색하다. 보통 통도사 홍매는 2월 초순께 피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몇 송이 피자마자 개화를 멈춰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한파가 몰아닥치고 매서운 북풍이 가지를 흔들어대니 꽃봉오리인들 어찌 배겨냈을까. 거기다 오미크론은 기승을 부리고 미세먼지는 눈앞으로 가리며 대선(大選)판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치달으니, 홍매는 그랬을 것이다. 차라리 꽃잎을 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 말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시절인 ‘서울의 봄’ 당시 김종필이 자주 썼다. 봄은 왔지만 봄이 봄 같지가 않구나. ‘서울의 봄’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부터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전까지의 정치적 과도기를 말한다. 이 때는 전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난 시기였다. ‘서울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있었던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가 돌아가는 한 계절은 바뀌고 또 바뀐다. 春(춘) 자를 풀어보면 풀(艸) 사이로 태양(日)이 그려져 있는 형상이다. 만물이 봄 햇살 아래서 싹을 틔우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은 통도사 홍매가 숨을 죽이고 있지만 땅에서는 어느새 햇살을 받은 봄까치꽃이 올망졸망 피어오르고 있다. 꽃은 순서대로 피고 계절은 거꾸로 가는 법이 없다. 조만간 통도사 홍매도 개화를 시작할 것이다.


눈 내리고 내려쌓여 소백산 자락 덮여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속 홍매화 한 송이

­‘홍매화(紅梅花)’ 전문(도종환)

눈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가 지났으니 경칩도 얼마 안 남았다. 홍매가 그리운 탐매객들은 벌써 전국 사찰로 떠났다. 이성부 시인은 ‘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