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근대건축을 이끈 독일의 건축가이자 바우하우스의 교육자로 활동했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1886-1969)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Details)’는 속담을 애용했다. 건축을 포함한 모든 조형물에서 세부의 마감이 중요하고 결국 그것이 한 조형물의 성패를 가늠한다는 의미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 속담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로 변형돼 주로 쓰이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정부나 지방자치단테의 정책에 적용해보면 총론이 타당하더라도 가장 사소한 문제, 즉 디테일을 잘 챙기지 아니하면 실패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를 찾아볼 수 있는 사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정부의 대응이다. 신종코로나와 같이 사람 간 접촉이나 공기 중 비말을 통한 감염병의 경우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집단감염 발생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축적된 자료와 경험이 없는 신종 바이러스라 예측과 대응에도 어렵다. 그래서 총론으로 보면 백신,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옳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람 간 접촉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했고 접촉 시 감염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을 포기해야 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위한 지원 대책은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의 방침에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동참했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결국 거리로 나와 정부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생활필수품이 된 마스크도 신종코로나 확산 초기 수급량이 부족해 ‘마스크 대란’을 겪었다. 상시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의료진마저 마스크를 재활용할 정도였다. 디테일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백신 부작용에 대한 지원, 청소년 대상 방역패스 논란, 자가진단 키트 대란 등의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울산 동구 정착도 마찬가지다. 우선 우리나라가 난민을 수용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측면뿐만 아니라 과거 여러 나라에 졌던 빚을 갚는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UN은 그해 겨울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위해 한국재건단을 구성했다. 전쟁 이전 수준으로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전쟁을 피해 피난 온 사람들과 실향민들을 돌보기 위해서다. 이 기구는 현재 UN 난민기구의 모태가 됐다.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 가입해 1994년부터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본격적으로 난민을 수용했다. 2012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난민으로 전 세계의 도움을 받던 우리나라가 난민을 수용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디테일하게 생각해보면 정부가 난민을 수용하는 것과 주민들이 난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우리나라는 동일한 정체성과 공동체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단일민족이다. 국제결혼, 외국인 노동자 유입 등으로 외국인의 수가 증가했지만 주민들은 다른 민족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동구 주민들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정착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심지어 대부분의 주민은 이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서 갑자기 알게 됐다. 이주를 결정한 법무부, 법무부로부터 이주 계획을 통보받은 울산시와 동구청 그 어느 기관도 주민들과 소통을 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부랴부랴 간담회를 열어 교육과 복지, 치안 대책 등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는 난민들이 동구에 들어오기 전에 합의가 이뤄졌어야 하는 부분이다.
정책의 옳은 총론과 잘못된 디테일이 만나면 사회적 갈등이 생긴다. 디테일을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마치 총론을 반대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정책을 실행한 주체다. 부디 아프가니스탄 난민 정착 문제에 대한 해결안에는 디테일이 살아 있길 기대한다.
김태규 동구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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