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대는 젊은축…데뷔했으니 열심히 할것”

2022-03-02     전상헌 기자
“세미야 잘 있나, 욕 봤데이, 아이고 고생 많이 했데이, 하는 김에 조금만 더해레이.”

지난달 27일 울산 남구 장생포문화창고 6층 소극장W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울산의 기성극단 ‘물의진화’와 마을 주민이 함께하는 악극 ‘새미골이야기’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 무대는 ‘장생포 마을악극단’ 소속 배우이자 장생포에서 평생을 살아온 70~80대 할머니들의 데뷔 무대였다. 아직 배우로서 정식 교육 등을 거치지 않았기에 사실 무대에서 주어진 역은 작았다. 하지만 그 어떤 배우보다 열정적으로 첫 무대에 올라 멋진 연기를 펼친 이원례(69·수일이 엄마역), 김추자(85·동네아낙1역), 도순성(82·동네아낙2역) 배우다.

이원례 배우는 그 당시 추억을 무대에서 표현했다고 말했다.

“특별한 대사는 없었어, 우리 집에 놀러 오고 했던 윤수일이 서울에 가서 10대 가수왕을 받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였어. 그때 동네 주민들이 버스 빌려서 서울 구경하러 가면 수일이가 인사하고 그랬던 기억이 생각나네. 그런 걸 무대에서 그대로 했을 뿐이야.”

김추자 배우도 거들었다. 연기라고 하기보다 장생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 것이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진짜 재미있고, 좋은 곳이었어. 고래가 많이 잡힐 때는 강아지도 돈 물고 다닌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이들 키운다고 고생을 해서 그렇지 세월이 어떻게 가는 지도 몰랐지.”

손자는 물론 가족이 모두 연극을 관람하며 도순성 배우의 데뷔를 축하했다고 한다.

“잠시 나오는데 모두 와서 관람하니까 살짝 부끄럽기도 했어. 그래도 내 평생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자랑스럽긴 했지. 언제 다시 공연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들을 연극 무대로 이끈 새미골 한글학교 차영일 작가는 무대가 ‘장생포 마을악극단’을 찾고, 할머니 배우들도 원한다면 항상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특히 이번 공연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공연을 앞두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무대에 오르지 못한 양순애(85) 배우도 데뷔할 수 있도록 다음 무대를 꼭 마련할 예정이다. 다행히 양 배우는 좋은 경과를 보여 수일 내 퇴원이 예정돼 있다.

“인생 100세 시대, 아직 70~80세는 젊은 축에 드는 거죠. 배울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습니다. 연극배우로 데뷔했으니 열심히 해야죠. 또 다른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도록 찾아볼 생각이고요.”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