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경찰서와 마주 위치했던 광복회 본부

2022-03-03     홍영진 기자

‘1910년대 최대 항일단체인 광복회 본부는 대담하게도 삼엄한 경비의 일제경찰서와 마주하고 있었다!’

최근 고 박상진(1884~1921) 의사가 총사령으로 활약한 ‘광복회’의 실제 사진이 발견(본보 2022년 2월28일자 1면)돼 관심을 끌었다.

이에 더해 이번엔 ‘광복회’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고신문이 새로 확인됐다.

‘광복회’는 박상진 의사가 1912년 대구에 설립한 곡물상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와 깊은 연관이 있다. 상덕태상회가 곧 광복회의 본부이자 국내외 독립운동의 연락거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은 상덕태상회의 위치가 ‘대구’라는 정도만 기술됐을 뿐 명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현호 우신고등학교 교사는 최근 조선일보 1921년 2월17일자 기사에서 상덕태상회의 위치가 일제치하 대구경찰서(현 대구중부경찰서)의 코 앞이었음을 밝혀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는 제목부터 ‘광복회 본부는 경찰서 앞’으로 시작되고 독립운동을 하다 강도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박상진의 근황과 활동을 기술한다. 기사 내용은 ‘(박상진이)경상북도 각지에서 부하를 지휘하야’ ‘대담하게도 대구경찰서 앞에 광복회 본부를 설치하고’ ‘경찰의 활동을 정찰하며 칠십명의 부하를 지휘하여’ ‘일만원 내지 이만원의 군자금을 모집하고’ ‘단총으로써 각지 부호를 위합하였다더라’ 등으로 구성된다.

이를 해석하면 박상진 의사는 각지에서 부하를 지휘하며 대담하게도 대구경찰서(현 대구 중부경찰서) 앞에 광복회 본부를 설치하고 경찰서의 행동과 경북경찰부의 행동을 정찰한 것이다. 또 70명의 부하를 지휘하며 권총으로 각지 부호들로부터 혹은 1만 원 내지 2만원의 군자금을 모집했다.

기사에 언급된 광복회 본부는 곧 대구 본정에 있던 ‘상덕태상회’다. 상덕태상회는 1912년 설립 이후 적어도 1916년 9월 대구권총사건 발생 때까지는 대구부 본정(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 1, 2가)에 있었다고 한다.

이현호 교사는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엽서를 통해 당시 광복회가 운영되던 시대상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확인되는 대구시 관련 일제엽서는 총 2장이다. 모두 1910년대 대구경찰서(오른쪽 2층 건물)와 주변 전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진의사순국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으로 활동한 이 교사는 “그 시대 상덕태상회, 즉 광복회의 본부와 주변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이같은 사료가 지속적으로 발굴되어 박상진 의사의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