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33)]명분 없는 사회

2022-03-04     경상일보

명분은 사람이나 사물 또는 행위 등이 지닌 명목과 그 명목에 합당한 본분이다. 명분은 사람에게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명목과 본분 사이를 일치시킴으로써 사회 질서를 확립시키는 규범이 된다. 여기서 명목은 마땅한 본분을 지시하고, 본분은 명목의 정당성을 제공해 양자가 일치하는 것이 바로 명분의 개념이다. 명분은 인간 개인의 행위나 국가사회의 결정이 그 목적에 맞게 실행되어야 할 정당성의 조건으로 제시된다.

중국 전국시대 때의 인물 시자(尸子)는 명·분이라는 두 글자를 분석해 설명하면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으면 ‘분’이 이루어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으며 ‘명’이 정해진다.”라고 하여, 다스리는 방법은 분별(分)에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분별의 올바른 기준은 명목(名)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상앙은 그가 지은 법가의 책 <상자>(商子)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저자에 가득하지만, 도적이 감히 빼앗지 못하는 것은 명분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고 하여, 명분이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며 행위를 규제하는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처세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져서 옳으면 나아가고 옳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 가끔 그럴싸한 거짓 명분을 내세우고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본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명분을 이야기해놓고는 행동은 정반대로 하는 사람들을 본다. 명이 옳고 그름이라면 분은 분수이다. 분수는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이며, 인간 개개인의 특성이며 그 특성에 따른 한계이다. 분수를 모른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말이며, 자신의 한계를 모른다는 말이다. 결국 명분이란 옳고 그름을 따져서 자신을 알아 자기에게 맞게 한다는 뜻이다.

한 개인이 관직에 임용되거나 사회에서 일정한 직위를 가지려면 그 정부와 사회 기관의 정당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한 인간이 자신의 정당성을 온전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 행위의 동기를 정당하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행동하게 될 환경의 정당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당면한 사회적 조직에 대해 처신하는 방법으로서 그 조직이 정당하면 나아가서 참여하고, 부당하면 그 조직을 정당하게 개조하기 위한 투쟁을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 조직을 떠나서 물러나야 한다. 명분 있는 처세가 아쉬운 시대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