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42)]꺼진 불도 다시 보자

2022-03-08     이재명 기자

강원도와 경북 일대에서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눈 앞에서 타들어가는 정든 가옥을 두 눈으로 뻔히 바라보면서 가슴을 쳤다. 지난 5일은 뭇 생명들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었다.

저 살비듬, 살비듬……/ 눈앞 훤히 생살을 도려낸 상흔 앞에/ 벌겋게 벗어 내린 알몸의 치부 앞에/ 난 보고도 못 본 듯 그만, 고개 돌리고야 만다// 지금껏, 있는 듯 없는 듯 애써 나를 지켜온/ 우직한 내 마음의 지킴이/ 울울창창 그 푸르디푸른 말씀의 침묵을/ 이 땅의 오랜 대물림 서슬 푸른 기개를/ 도대체 누가/ 백주창탈하듯/ 확,/ 한순간 불질러버렸나//…

‘불탄 산’ 일부(윤홍조)

지난 5일 발생한 강릉시 옥계면 산불은 60대 남자가 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주민들이 수년 동안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방화로 치면 울산에서 일어난 ‘봉대산 불다람쥐 연쇄 방화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사건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간 ‘봉대산 불다람쥐’로 불리는 김 모씨가 동구 봉대산에 96차례 저지른 방화 사건을 말한다.

처음에 경찰은 봉대산 산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화재가 잦아지자 1995년 봉대산 방화범에게 현상금 500만원을 걸었다. 그러나 산불을 계속 일어나고 방화범은 신출귀몰하게 도망쳤다. 이윽고 경찰은 현상금을 3000만원으로 올렸다가 2009년에는 당시 최고액인 3억원으로 인상했다. 결국 김씨는 2011년 3월12일 화재지점 인근의 아파트 CCTV 화면에 찍혀 검거됐다.

불다람쥐의 실체는 놀랍게도 멀쩡한 대기업 중간 관리자인 50대 가장이었다. 그는 “가정문제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방화를 했고, 산불을 낸 뒤 산불 진압과정을 지켜보면서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경칩을 기해 들판에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렸다. 경칩 이후 갓 나온 벌레와 풀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옛 사람들은 경칩 무렵에 그 해 첫 번째 천둥이 치는데,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비로소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사마천 <사기열전>에 ‘사회부연(死灰復燃)’이라는 말이 있다. 죽은 불씨에 다시 불이 붙었다는 뜻으로,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을 얻음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 불조심 표어로 치면 ‘꺼진 불도 다시 보자’쯤 되겠다. 화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