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가 만들어가는 ‘보행자가 안전한 나라’
내게 있어 ‘스위스’라는 나라는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지이자 신혼여행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곳에서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융프라우의 위엄과 산을 따라 내려오며 볼 수 있는 동화 속 마을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아내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스위스 인터라켄 동역에 내려 발을 딛었다. 평화롭고 조용한 영화 속의 마을의 도롯가에서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서행하는 차량들과 보행자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을 위해 차량을 일시정지시키고 보행자들이 완전히 지나가서야 차량을 다시 운행하는 운전자들의 모습들이었다. 자동차 광고 속에서나 보던 보행자 중심의 운전행태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에게 길을 건널 때 좌우를 살피고 차가 지나가고 나면 건너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스위스에서는 오롯이 운전자에게 주의의무를 부여하는 모습이랄까? 우리나라의 운전문화도 스위스처럼 운전자 아닌 보행자 중심이라면 보행자 교통사망사고가 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우리경찰청도 작년 4월17일을 기점으로 보행자 교통안전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도시부의 제한속도를 기본 50㎞/h로, 주택가 도로 등 보행위주 도로의 제한속도를 30㎞/h로 조정하는‘안전속도 5030’캠페인을 실시하였다.
이는 속도를 10㎞/h 줄이면 차량 제동거리가 25% 줄어들고, 제동거리가 줄어들면 교통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차량이 정차할 수 있어 그만큼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올해 7월부터 개정·시행되는 도로교통법 제27조 보행자보호 의무 강화에 따라 이제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그 횡단보도 앞(정지선이 있으면 그 정지선)에서 일시정지 해야 한다. 횡단보도를 당장 건너고 있는 보행자가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횡단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도 일시정지 하도록 강화된 것이다. 또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 앞에서는 보행자 횡단여부에 관계없이 일시정지하도록 강화됐고,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내년 1월부터 우회전 신호등이 도입될 예정으로 우회전 삼색등이 적색인 경우 우회전을 할 수 없다.
이는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에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교통사고 사례분석에 근거했다. 해당 기간 우회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보행자가 212명, 부상자는 1만3,150명이었고 이중 도로를 건너다 사망한 사람이 126명이었다. 그 중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다 숨진 경우는 94명으로 기타 횡단 중 사망한 보행자(32명)보다 3배 가량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우회전 보행 교통사고를 가해차종별로 살펴보면, 승합차와 화물차, 건설기계에 의한 사망자 비율이 전체 보행사고에 비해 높았다. 이는 대형차량이 우회전시 차량 우측 사각지대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결국 우회전 교통사고로 인한 보행자 사고는 운전자가 보행자 보호 의무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운전자가 교차로에서 일단 정지하는 안전한 운전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작년에 이어 ‘보행자가 안전한 나라’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실천이 필요하다. 아무쪼록 보행자 중심, 보행자 우선의 운전습관이 정착되어 우리 국민 모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길 기대해본다.
안재필 제2기동대 경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