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32)]미국에서의 대한독립운동과 도산 안창호 선생

2022-03-09     경상일보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3월1일에 간소한 기념식을 치르고 공휴일을 즐겼다. 요즈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상황을 바라보면서 약소국의 비애와 조국 독립의 소중함을 새삼 절실히 느끼면서 3·1절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를 만끽하는 사회가 되어서인지 국기게양이 많이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경찰 총칼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였고,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선열들에게 우리가 감사한 마음없이 사는 것은 아닐 게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크게 무장론(이동휘, 박용만), 외교론(이승만), 실력양성론(안창호)으로 나뉘었다. 가끔은 서로 반목하고 야비한 주도권 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크게 생각해보면, 다르거나 반대되는 명제들이 현실에서는 모두 필요하다. 국가발전를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적으로 부드럽게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 때론 강하게 부딪치며 불굴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개인도 한 가지 전략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데, 하물며 한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방식과 여러 인재가 필요한 법이다. 지도자들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며 독립운동을 했더라면 우리의 수치와 고통이 좀더 일찍 끝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미국, 한국, 중국에서 실력양성에 중점을 두면서도 다른 면도 함께 아우르는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3·1절을 맞이하여 당시를 생각해보면, 강대우호국인 미국내 대한독립운동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재미 한국인들은 대일 공중전 준비로 캘리포니아 북부에 항공학교를 만들었고, 네브래스카와 하와이에 독립군 양성학교를 설립했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농장 한인 농민들이 독립군 자금마련에 대거 참여했다. 아마도 강대국 미국은 국제사회의 주요의제를 다루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 의회의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0년 미주한인이민사를 연구하는 김지수에 따르면 미국 서부지역의 독립운동은 안창호 선생이 단연 중심인물이었다고 한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도산 선생을 기념하는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는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존경받는 한국인이 아닌가 싶다. 리버사이드시는 캘리포니아주 LA인근 도시이다. 이곳 시청 앞에 ‘안창호 동상’이 서 있고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도산 안창호 우체국’과 ‘패밀리 하우스(한국학 연구소)’도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는 ‘도산 안창호의 날’ 기념일이 제정되어 있는데, 리버사이드시는 8월11일, 캘리포니아주는 11월9일이다. 우리나라 서울에는 도산대로와 도산공원이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리버사이드 시의회는 2016년 도산이 세운 최초 한인촌 ‘파차파 캠프’를 사적지로 지정했다. 왜냐하면 이 캠프는 농장지역으로 1905년부터 1918년까지 초기 미주 한인사회의 중심지로 독립운동의 메카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1905년 도산 선생이 세운 미국 최초의 한인촌이자 코리아 타운의 효시이기도 하다. 실제로 1905년 ‘공립협회’가 이곳에서 설립되었고, 그후 ‘신민회’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설립준비가 이곳에서 진행됐다. 부인 이혜련에게 권유하여 샌프란시스코 한인 노동자와 부인들을 결집하여 ‘대한여자애국단’도 창설하여 1920년부터 3·1운동 기념 시가행진을 통하여 한국이 독립국가임을 알리는 행사도 했다.

민주주의의 신봉자이며, 교육과 의식개혁에 앞장섰던 도산 선생은 무실(務實)·역행(力行)·충의(忠義)·용감(勇敢)의 4대 정신으로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사회에서 한인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오렌지 한 개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청년들에게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돼라’고 권유했고 그의 큰딸 수전에게는 ‘훌륭한 미국인이 되어라. 그러나 한국인의 정신을 잊지말라’고 유언했다. 도산 선생의 뜻과 말씀을 되새기는 3월이 됐으면 한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