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발자국은 알고 있다
언제부턴가 ‘탄소’하면 환경과 함께 ‘에너지’부터 떠오른다. 태양광, 풍력, 수소 등이 단골 뉴스거리가 됐고, 기업 사용전력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100’ 캠페인이 정치 이슈가 됐다. 그러다 보니 탄소중립이 개인의 일상과는 간극이 있는 정치·경제적 담론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탄소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뿜어나온다. 문자 한 건, 커피 한잔, 햄버거 한 개, 웹 검색 한 번, 물 끓이기, 설거지 등 매 순간 그 흔적이 지구에 남는다.
기후과학자들은 온실가스와 관련해 산업화 시기인 1850년을 중요한 기준점으로 본다. 이후 약 170년간 인류는 화석연료에 의존해 생산과 소비를 확대해왔고 온실가스도 급증했다. 지난해 지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9.13ppm에 달했다. 280ppm으로 추산되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50% 늘어난 것이다. 이는 다시 ‘기후위기’ 부메랑이 되어 인류에게 돌아오고 있다.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전환, 에너지효율 향상, 탈탄소 미래기술 상용화 등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수송·산업 부문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각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탄소 저감’을 고려해 낭비되는 자원을 최소화하면서 장기적으로 사회의 모든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남기는 ‘탄소발자국’을 살펴보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탄소발자국은 제품과 서비스의 원료 취득, 가공, 저장, 운송, 폐기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총량을 나타낸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서는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에너지 소비행태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겨울철 실내온도를 2℃ 낮추고 여름철에는 2℃ 높이고, 전기밥솥 보온기능 사용을 하루 3시간씩 줄이면 가구당 연간 이산화탄소 308㎏을 감축하고, 약 9만7000원의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0%만 참여해도 약 34만대의 자동차가 연간 배출하는 약 65만t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게 된다.
자원재순환에 동참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은 연간 88㎏으로, 1인당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 3위로 꼽힌다. 플라스틱을 안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제대로 버려야 한다. 생수병 하나에도 몸통, 라벨, 뚜껑 등에 3~4가지의 서로 다른 플라스틱이 들어가 있다. 깨끗이 씻고 말려서 라벨에 나와 있는 PET, PP 등 종류별로 분리 배출하는 것만 생활화해도 재활용률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국내 수송 부문 중 도로에서 내뿜는 탄소 배출량이 96.5%다.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좋겠다.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식생활을 위해 육류보다는 채식을 습관화하고, 운송거리가 긴 수입농산물 대신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식탁에 올리자.
이런 소소한 실천이 탄소중립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야 사회가 바뀐다.
한국동서발전에서는 임직원 모두 개인컵을 사용하면서 종이컵이 자취를 감췄다. 회의 때마다 개인컵을 가져오도록 안내하고, 사내 게시판, 엘리베이터, 메일 등으로 일회용품 안쓰기를 꾸준히 독려한 결과다. 지금은 더 나아가 지역사회로 탄소중립 실천문화를 확산해나가고 있다.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걸음 기부로 태양광설비를 지원하는 ‘EWP에너지1004’, 폐플라스틱을 생활용품으로 변신시키는 ‘새활용 캠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매일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작은 발자국이 남는다. 그 발자국이 기후위기를 부르는 ‘탄소발자국’이 될지, 탄소중립을 이끄는 ‘초록발자국’이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환경을 살리는 소비부터 올바른 분리배출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를 풀 해법은 매 순간 우리 곁에 놓여있다. 탄소발자국을 줄이려는 실천적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김영문 한국동서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