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44)]삼월의 눈, 그리고 눈물

2022-03-22     이재명 기자

영남알프스에 눈이 수북수북 쌓였다. 이번 겨울 내내 눈 한번 내리지 않다가 봄 꽃이 막 피어오르니 시샘이라도 하듯 눈을 퍼부었다. 나태주 시인은 그러나 이 눈을 ‘눈물’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떨군 눈물을 먹고 자란다.

눈이라도 삼월에 오는 눈은/ 오면서 물이 되는 눈이다/ 어린 가지에/ 어린 뿌리에/ 눈물이 되어 젖는 눈이다/ 이제 늬들 차례야/ 잘 자라거라 잘 자라거라/ 물이 되며 속삭이는 눈이다. ‘삼월에 오는 눈’ 전문(나태주)

어제는 춘분(春分)이었다. 춘분은 태양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는 날이다. 남반구이든 북반구이든 똑같은 햇빛을 받고, 낮과 밤의 길이도 똑같다. 그러나 봄은 쉬 오지 않는다. ‘춘분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설늙은이’라는 말은 젊지도 않고 아주 늙지도 않은 조금 늙은 사람을 가리킨다. 춘분 무렵에는 꽃샘추위가 자주 맹위를 떨쳐 아주 늙은 사람은 아예 밖에 나가지 않는데, 설늙이들은 봄 농삿일을 한답시고 밭에 나갔다가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3월이 전진한다/ 불퇴전의 용사처럼/ 앞으로 앞으로/ 겨울을 밀어내며 봄을 쟁취하려/ 맨 앞에서 싸우느라/ 거칠어진 손으로 나뭇가지의 눈을 털고/ 빛의 화살을 던져 얼음을 녹인다// 겨울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얼어붙은 뿌리에 부활의 물을 뿌리고/ 찬바람 흙먼지 마시며 2월의 벽을 흔들어/ 새싹이 돋고/ 투박한 3월이 제 몸을 부수어 만든 길에/ 4월과 5월이 저만치 따라오며/ 저 잘난 척 출렁대며 깃발을 흔든다… ‘3월’ 일부분(최영미)

혹독한 꽃샘추위 속에서도 춘분 무렵이면 반드시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바로 제비다. 울산의 아동문학가 서덕출(1906~1940)은 ‘봄편지’에서 제비를 대표적인 봄의 전령사로 그렸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대한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춘분에는 음과 양이 서로 교차하는 시점인데, 결국은 음의 기운이 밀려나게 돼 있다. 그러나 음의 기운은 섣불리 물러나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를 몰고 오거나 눈을 펑펑 쏟아붓기도 한다. 최영미 시인은 3월을 ‘겨울을 밀어내며 봄을 쟁취하려/ 맨 앞에서 싸우는’ 용사라고 표현한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