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소풍 김밥

2022-05-04     경상일보

놀러 가기 좋은 계절인 봄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학교가 소풍을 자제했는데, 최근에 단속 조치가 완화되면서 소풍 가는 학교가 많아졌다. 소풍 여부에 따라 학생의 희비가 엇갈릴 정도로 소풍은 인기가 좋다. 교사 또한 수업 부담에서 벗어나니 소풍을 반긴다. 인솔과 안전이라는 큰 책임이 주어져도 소풍을 싫어할 교사는 없다. 좋은 추억인 소풍, 그 중에서도 소풍 기억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김밥과 간식을 떠올려보자.

소풍의 모습은 시대별로 다르다. 한국의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가정소득이 높아졌고, 소풍 간식과 김밥이 시간이 갈수록 화려해졌다. 1960년대에 김밥은 고급 음식이었고, 부모가 김밥을 싸주지 못하면 자녀에게 매우 미안해했다. 김 속에 밥과 나물만 있어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원로교사는 소풍 김밥을 보면서 예전의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1970년대에는 탄산음료 공장이 많이 생겨서 병에 든 콜라와 사이다가 필수가 되었다. 소세지가 들어간 김밥이 최고였고, 나물만 들어있는 김밥을 싸온 학생은 주눅이 들곤 했다.

경제가 발전한 1980년대에는 김밥에 소세지, 게맛살, 어묵(오뎅), 계란이 기본으로 들어갔다. 김밥을 못 싸오는 학생이 별로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아졌다. 1990년대 소풍 음료에는 무거운 병음료 대신 캔음료가 많아졌고, 학생은 소풍 전날에 슈퍼에서 마음껏 간식을 샀다. 이렇게 기분 좋은 소풍에 평생 잊혀지지 않는 상처도 있으니, 풀어진 김밥이었다. 그래서인지 ‘김밥 옆구리 터진 소리’는 헛소리를 의미하는 관용구였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김밥은 1000원으로 언제든 사 먹는 평범한 음식이 되었다. 김밥 도시락 뚜껑을 가슴 두근거리며 여는 모습이 사라졌다. 더 풍족해진 2010년대, 2020년대에는 소풍 전날 슈퍼가 붐비지 않는다. 소풍 장소마다 편의점이 있으니 현장에서 사 먹으면 된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소풍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다. ‘설레느라 잠을 못 잤다’ ‘김밥을 싸는 엄마 옆에서 집어먹은 김밥 꽁다리가 맛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비가 안 오면 만세를 불렀다’는 얘기 또한 추억이 되었다. 솜사탕, 장난감, 화약총, 뽑기를 파는 아저씨도 안 보인다. 수건 돌리기, 장기자랑 보물찾기도 거의 다 사라졌다. 울산 소풍이 달라진 점은 하나 더 있다. 놀 장소가 없어서 울기등대, 학성공원에 학교 10개씩 몰리는 일은 이제 없다. 울산대공원, 고래박물관, 천전리 각석, 각종 문화유적 등 소풍과 현장체험을 겸할 수 있는 문화유적과 시설이 많아졌다.

오늘도 학생들은 옆 학교를 들먹이며 소풍 가자고 보챈다. 즐거운 공식 야유회라는 사실이 변함없기 때문이다. “오이를 쭉 빼면 엄마가 야단쳐요” “저는 시금치가 별로에요” “교복이에요, 사복이에요?” 재잘대는 장면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무엇보다 수업을 안 해서 좋다는 점 또한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김경모 대송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