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꽝 언 경기…울산 연말분위기 실종

장기 불황·음주단속 강화에 술자리 줄고 회식풍토 변화

2019-12-26     김현주

靑 하명수사 의혹 일파만파
공무원·경찰 송년회도 자제
현대重 임단협 난항 겪으며
동구상권 ‘돈줄’ 말라 울상


“시청도 죽을 맛이겠지만 우리가 제일 죽을 맛이죠.”

26일 방문한 울산시청 인근 한 돼지고기 식당. 오후 장사를 위해 준비를 하는 김모(55)씨는 며칠째 단체예약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참 연말 회식으로 단체예약이 밀려들고 정신없이 바빠야 하지만 도리어 일손이 남아 최근엔 가게 일을 함께 하던 아내도 격일로 쉬고 있다. 작년까진 일주일에 한 두 팀은 꼭 단체예약이 있었지만 최근엔 열흘에서 보름에 한팀 정도에, 대부분 손님이 2명 내지 3명의 소규모 손님이라는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경기도 안 좋고 음주단속도 강화되면서 작년부터 연말 단체회식 손님이 줄었는데, 올해는 더 하다. 이 주변은 시청을 포함해 공공기관 손님이 가장 많은데, 분위기가 분위기라 우리까지 된서리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음주단속이 강화된 윤창호법은 물론 원치않는 술자리 강요 근절 문화 등으로 최근 송년회 술자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지역 식당가와 유흥가가 울상을 짓고 있다. 전반적으로 과도한 음주 자제와 저녁식사 후 커피 선호 등 개인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울산의 경우 현대중·현대미포 임단협 미타결에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등 연이은 악재가 겹치면서 울산 전체가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다.

연말을 맞아 송년회 등 각종 명목의 회식이 가장 활발할 때지만 올해 울산은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가 힘들다. 특히 지역 공무원들은 올해 단체 송년회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하는 분위기다.

울산시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연말 회식 분위기가 많이 바뀐 상태지만, 최근 울산시가 여러모로 시끄러운 점을 고려하면 쉽사리 회식 이야기가 나올 리가 없다. 보통 인사발표가 나면 회식을 꼭 한다. 하지만 올 연말에는 분위기상 어렵고 연초 분위기가 좀 나아진다면 6급 이하 인사를 계기로 그 때 한 번에 몰아서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다른 공무원 관계자 역시 인사발령과 회식은 필연적 관계지만 올해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는 시청이나 구청 인근 식당에 손님이 없으면 공무원들 보고 연말 인사 발령 좀 빨리 내라고 우스개소리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엔 인사가 나도 회식 분위기가 안 날 듯 하다”고 말했다.

울산시와 함께 뒤숭숭한 울산경찰 관가 주변도 회식이 뚝 끊기긴 마찬가지다.

경찰 한 관계자는 “경찰청 조직문화개선에 따라 이미 2년여전부터 회식 강제 참여 등이 점점 줄어들어 회식 등 자리가 예년만 못한게 사실이지만, 특히 올해는 그마저도 이래저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조선업 불황으로 장기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동구지역 소상공인들은 현대중공업 노사 임단협이 난항을 겪으면서 더 애가 탄다. 임단협이 빨리 타결돼야 돈이 풀리고, 돈이 풀려야 그나마 중공업 손님들이 늘어나 그나마 상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동구 방어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강모(58)씨는 “중공업 직원들을 바라보는 저녁장사는 요즘 기대 안한다. 오히려 요즘은 낮에 손님이 좀 있다. 저녁 예약은 손님 대접을 위해서지 기업 사람들의 회식은 아니더라”면서 “술 마시는 손님도 거의 없어 예전만큼 주류 주문도 많이 안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연말경기가 극도로 얼어붙으면서 남구 삼산동과 무거동 등의 유흥가는 예전과 같은 단체손님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한 택시기사는 “연말이라곤 하지만 한가하다 싶을 정도로 손님이 없다. 예전처럼 단체가 술집 등을 전전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연말 회식풍토가 바뀌는게 반가운 사람들도 있다. 한 공무원은 “과거에 회식 강요가 심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어라 마셔라 하던 연말 회식 풍토가 바뀌면서 딱 좋은 만큼만 어울리고 헤어지게 돼 부담도 없고 좋다”고 했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