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동학대처벌법 사각지대 투성이, 하루 속히 보완해야

2022-05-16     이재명 기자
아동학대범이 피해 아동의 ‘보호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동 관련기관 취업제한과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받지 않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충분한 논의 없이 급하게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동학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해 지금이라도 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울산에서 계모가 8살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울산 서현이 사건’의 계기로 지난 2013년 말 제정됐으며, 이듬해 9월 시행됐다. 이 특례법은 아동학대 범죄 행위자가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후 국회는 아동학대 사건의 발생건수가 계속 증가하고 현행법에 허점이 속속 드러나자 2020년 3월과 2021년 3월 특례법을 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동학대범에 대한 아동 관련기관 취업제한에 구멍이 뚫렸고, 아동학대범에 대한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강제 이수도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지난 2014년 시행된 아동학대처벌법이 ‘보호자에 의한 아동학대’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이진영 판사는 지난해 11월 A씨의 아동학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A씨에게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과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해달라는 검찰의 청구는 기각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올해 3월 기각됐다. 서울동부지법 형사2단독 신용무 부장판사 역시 올해 2월 B씨의 아동학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A씨의 판결과 같은 이유로 취업제한과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하지 않았다. 두 판사 모두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피해 아동의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월 발간한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도 아동학대 행위자의 75.6%는 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특례법의 적용대상을 ‘비보호자’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제3자가 아동학대를 저질러도 취업 제한 등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동학대 방지에 큰 구멍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일어난 아동학대는 3만45건으로 1년 전보다 약 22% 늘었다. 2020년에는 3만8929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아동학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특례법은 아직도 사각지대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