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합법의 옷을 입은 건축사 자격 대여

2022-05-25     경상일보

페이퍼 컴퍼니를 인수해 실제 시공을 하지 않는 건설회사를 차리고, 이를 무면허 건축업자들에게 불법 대여한 건설회사 대표와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기소되었다는 2017년도 한 언론을 장식했던 기사는 국토교통부가 부적격 건설업자 단속을 강화한 이후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기사가 되었다. 평소 예방 차원의 단속을 통해 이런 불법 사례가 근절되었더라면 좋았겠지만 2016년 경주 대지진을 전후로 우리나라의 곳곳의 건축 현장에서 부실 시공과 각종 재해사고가 발생되었고 이에 국토교통부가 무면허 건설사업자들에게 처벌의 칼을 빼들면서부터 면허 대여 사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건설업 면허 대여에 비해 적발이 쉽지 않은 건축사 자격 대여 행위는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건축사는 전문자격자로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 건축물 유지관리 및 해체감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건설기술자와 건축사보 등 조수(助手)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건축사의 통제와 책임 아래 보조 인력에게 위와 같은 건축사의 고유 업무를 맡길 수 있는 구조가 합법이다. 이로 인해 건축사 자격 대여의 기준이 더욱 모호할 뿐 아니라 대여 행위 또한 적발이 쉽지가 않은 것이다.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 가수 조모씨는 그림 작품 대작(代作) 논란에 휘말려 기소되었다가 2020년 6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에 따르면 가수 조씨는 2009년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인 A씨에게 1점당 10만원 상당의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였으며, 자신은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A씨가 임의대로 회화로 표현하게 하거나, 기존 자신의 그림을 그대로 그려달라고 하는 등의 작업을 지시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A씨는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고, 미술작품의 작가가 아니며,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작품이 친작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해 제작됐는지 여부가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명 가수 조씨의 사건은 결국 무혐의로 종결되었지만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미술계에서 대작 논란은 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으로도 인정받는 건축설계 또한 보조자의 역할과 목적에 따라 어떤 비중으로 작업에 참여하였는지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고, 이와 유사한 형태의 자격대여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마치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건축설계가 합법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의 사례를 이야기 해보자면 건축사 자격이 없는 고용주가 건축사를 고용해 법인사업자로 건축사사무소 등록을 하고 자신 또한 그 법인에 임원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고용주와 건축사가 법인의 동등한 임원이지만 실상 건축사는 고용주의 합법적인 직원이 되어 고용주가 건축사 자격을 편법적으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언론을 통해 흔히 들어보았을 ‘사무장병원’과 ‘사무장약국’은 자격을 대여한다는 개념에서는 건축사자격 대여와 비슷하지만 의사는 직접 환자를 진료해야하고 약사도 반드시 본인이 약을 조제해야 한다고 관계 법령에 명시되어있기에 보조자의 도움을 합법적으로 받는 건축사보다 자격 대여 여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장관 후보자들이 국민을 위해 일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평가하기 보다는 얼마나 도덕적이며 윤리적인지를 엄격히 따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지난 4월 본보를 통해건축사의 공적 역할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위한 건축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함과 동시에 모든 건축사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지만 이 모든 것이 건축사의 자질과 더불어 도덕성과 윤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합법의 옷을 입은 건축사 자격 대여 사례가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양산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김원효 울산건축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