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I♥NY, 도시 ‘슬로건’이 만드는 도시경쟁력
사람의 첫인상을 무엇으로 판단할까? 또는 결정될까?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그 사람의 ‘얼굴’이다. ‘얼굴 표정’이다. 도시에도 ‘얼굴’이 있고 ‘표정’이 있다. 민선자치시대이니 당해 임기 중인 개별 도시의 시장(市長, mayor)이 ‘도시의 얼굴’일 수도 있다. 시를 상징하는 꽃인 시화(市花)나 시목(市木), 심볼(Symbol)일 수도 있다. 그 가운데 ‘슬로건’이 있다. 도시브랜딩으로서의 도시 슬로건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래서 성공한 사례로 뽑히는 것이 뉴욕시의 ‘I♥NY’이다. ‘아이 러브 뉴욕(I ♥ New York, 1975)’이라는 글자이지만 그림처럼 읽힌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아이엠스테르담(I amsterdam, 2004)’ 슬로건도 성공한 도시브랜딩 사례 가운데 하나다.
1970년대의 미국 뉴욕은 경제 침체와 늘어나는 범죄로 인해 ‘세계의 범죄 수도’로 불리며 문제 도시의 상징이었다. 도시 상황과 여건이 이렇다보니 관광객은 줄어들었다. 당연히 뉴욕시에 투자하고자 하는 투자자가 감소하면서 도시 곳곳이 슬럼화되면서 도시환경이 나빠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1975년 뉴욕시 상업국은 관광객들에게 뉴욕시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광고전문가와 그래픽디자이너, 작곡가 등이 참여하는 도시브랜딩 캠페인을 진행했다. 공공에서 시작된 작업이었지만 민간주도로 도시브랜드 전략을 마련했다. ‘I♥NY’을 디자인한 밀턴 글레이저의 참여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세계가 놀란 9·11테러 직후인 2001년 9월19일 디자이너였던 글레이저는 뉴욕 데일리 뉴스(Daily News)를 통해 ‘I♥NY More Than Ever(나는 그 어느 때보다 뉴욕을 사랑합니다)’라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그렇게 제작된 신문은 시민들 손에 전달되었고 이것은 9·11사태로 상처 입은 시민들의 결속과 상처 치유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 2020년 6월26일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없지만 그가 만든 ‘I♥NY’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슬로건이자 도시브랜딩 사례이다.
울산시를 대표하는 꽃은 ‘장미’이고 시목은 ‘대나무’다. 시조(市鳥)도 있다. ‘백로’다. 그래서 5월이면 ‘장미축제’도 있고, ‘십리 대나무 숲’도 조성된 것이다. 이것을 울산을 대표하는 시화나 시목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울산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울산시의 슬로건은 ‘The Rising City’(새롭게 도약하는 울산, 비상하는 울산, 해오름의 도시 울산)이다. 이 역시 울산시민들은 얼마나 또 정확히 알고 있을까? 아마도 울산 시민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비율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잘 못 만들어서 일까? 아니면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아서 일까? 울산시는 광역시 승격 20주년을 맞은 2017년 도시 정체성을 담아낼 브랜드 슬로건을 공모한바 있다. 기존 2004년에 만들어진 슬로건 ‘울산 포 유(Ulsan for you)’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뀐 것이 현재의 슬로건이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울산시를 대표하는 슬로건을 잘 모른다. 알아도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민선 7기로 넘어오면서 관공서 차량과 공공시설물 등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역 언론의 질타는 그래서 아프다.
‘도시브랜드’가 도시의 경쟁력이다. 경쟁력 있는 도시 브랜드는 ‘슬로건’으로도 가능하다. 그 도시를 기억하고 찾게 만들 수 있는 슬로건을 갖는다는 것은 그 도시 뿐 아니라 해당 국가차원에서도 행운이다. 우리나라 80여개의 개별 도시들은 어떤 슬로건으로 어떤 도시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대답할 수 없다면 오늘 빨리 도시의 슬로건을 교체하거나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슬로건 없는 도시는 도시의 목표가 없는 것과 같다. 지향점이 없는 도시는 도시 간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I♥NY’을 만든 글레이즈는 저작권을 뉴욕시에 무상으로 양도했다. 이 덕에 티셔츠와 모자, 머그컵 등 다양한 상품에 찍혀 팔리는 ‘I♥NY’ 디자인을 통해 뉴욕시는 매년 3000만달러(한화 약 360억원)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 슬로건이라고 읽히는 글(wording)일 필요가 없다. 그림처럼 보이는 슬로건, 그림 문자 슬로건이 좋다. ‘I♥NY’처럼 말이다. 이런 슬로건이 부럽다. 우리는 만들 수 없는 것일까? 더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을 위해서라도 내가 뽑은 ‘메이어(市長)’들이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