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만들어도 남는게 없어”, 수주호황에도 조선업 울상
지난해부터 시작된 수주 호황으로 올 하반기 흑자가 예상됐던 울산지역 조선업계가 최근 후판 가격 상승과 러시아발(發) 리스크로 고전하고 있다. 여기에다 임금 인상 압력에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대규모 수주에도 웃지 못하는 형국이다.
29일 철강·조선업계에 따르면 두 업계는 최근 선박용 후판 공급 가격을 t당 10만~15만원 올리는 것으로 합의하고 올해 상반기 협상을 마무리했다. 후판은 선박에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 제조원가의 20%가량을 차지한다. 후판가가 지난해 t당 50만원 인상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상승 흐름을 이어가면서 수익성 개선을 노리던 조선업계는 또다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국내 ‘빅3’ 업체인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이러한 후판가 인상을 염두에 두고 지난 1분기 1000억~4000억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선반영했고 결국 모두 적자를 냈다. 다행히 최근들어 조선업계 수주 실적이 회복되면서 수주 보릿고개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문제는 물이 들어왔지만 노 저을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수주 절벽기 동안 상당수 노동자가 조선소를 떠났기 때문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저임금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인력난 해소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협력사를 포함한 국내 조선소 인력은 2014년 말 20만3441명에서 지난해 말 9만2687명으로 7년 새 54% 감소했다. 협회는 올해 조선 생산기능인력(협력사 제외)이 4만7000명까지 필요한 반면 현재 인력은 3만8000명대에 그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다 조선 협력사 노동자들은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라도 임금이 대폭 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남에서는 임금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1개 하청업체들이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여파로 러시아 선주의 계약 미이행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조선업계에 드린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2020년 10월 러시아 선주로부터 수주한 LNG 운반선 3척 중 1척을 계약 해지한다고 공시했다. 중도금이 기한 내 입금되지 않은 것이 해지 이유로, 금액은 3300억원 정도다.
현재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의 러시아 수주 잔량이 무려 9조원에 이른다. 삼성중공업이 6조3500억원으로 가장 많고 대우조선해양이 2조원, 현대중공업·미포조선 등이 포함된 한국조선해양이 6000억원이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가 국제금융결제망(SWIFT)에서 퇴출되면서 앞으로도 이같은 대금 미지급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이번 달부터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대량 발주가 개시될 것으로 보여 국내 조선업계가 이를 계기로 분위기 전환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석현주기자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