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2022-06-01     경상일보

우리는 누구나 오늘을 만날 때 과거의 경험을 바탕삼는다. 그것이 기억의 환기로만 머무르든, 상상력의 발현으로 나아가든, 마주한 오늘이 지닌 의미를 해석하고 그에 필요한 대처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 여겨지는 것을 선택한다. 그런데 무엇을 선택할 때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느낌에 영향을 받는다.

박문호의 <뇌 과학 공부>에 의하면, 사람이 대상을 만나면 반드시 어떤 ‘느낌’이 일어난다고 한다. 동물이 감각에 머무르는 것과 다르게 느낌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있는 마음의 능력으로 대뇌 피질 전체가 관여하여 일어난다. 감각 입력 과정에서 느낌이 생기며, 생존 반응이 순간적으로 송출되어, 신체 반응을 일으키며 의식의 각성 상태에 따라 느낌의 정도가 다르게 표출된다. 이 네 가지는 항상 동시에 일어나며 반드시 기억이 관여한다. 더하여 느낌은 맥락이 있어야 일어나는데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처음이지만 ‘왠지’ 어떤 느낌이 함께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그 사람 얼굴에서 내 경험한 과거 어떤 정보가 영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때문에 솥뚜껑 보고도 놀라고 산다. 솥뚜껑이라고 알아채는 것은 그다음 일이고 이것 또한 누구에게나 오는 정신 차림은 아니다. 어쩌면 자라를 만난 경험에 갇혀 솥뚜껑을 못 본 채 오래 살아가기도 할 것이다.

며칠 전이다. 전자 결재를 하다가 비슷하게 짊어져야 할 상황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보다 하는 일이 두 배나 많아 보여 어찌된 상황인가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러 찾아갔다. 맥락도 모른 채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기 위함에서였고, 무엇보다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그럴 수밖에 없는 최선을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한 오 분 정도 이야기하면 충분히 이해하게 될 거라 여기며 꺼냈던 화제를 두고, 한 시간 넘도록 입씨름을 했다. 서로가 오해한 부분을 바로 잡는데 진땀을 흘렸다. 그도 나도 과거의 경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해서 생긴 곤란함이었다. 그가 우리 학교에 오기 전에 먼저 온 소문이 나에게 이미 저장돼 있었던 모양이고 그는 학년 초에 내가 건넸던 섭섭함에 갇혀 있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우리는 ‘오늘의 학생이 살아갈 내일을 빼앗지 않기 위해(존 듀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에 모자라다. 어이할까?

로저스의 말을 마음에 품고 우려본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는 믿을 만하고 선한 존재다. 인간은 자신의 문제 발견과 해결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실현의 선천적인 경향성을 지닌다. 간섭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 지배하지 않으면, 스스로 바르게 행동한다. 설교하지 않으면, 스스로 개선한다. 강요하지 않으면, 그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된다.’ 그러니 그 만남이 쓰디쓰더라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고군분투하다 보면 뭔 수가 생기겠지.

신미옥 울산고운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