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가족이 나를 건사해온 것이다

2022-06-03     경상일보

우리가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며 의미를 되새기지만 가족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정말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호숫가에 앉아 쉬며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이제는 생기기를 바랐다. 그 순간 산신령이 나타나 그동안 고생했으니 갖고 싶은 5개를 말하면 다 들어주겠노라고 한다. 돈이 원수였으니 생각났고 소중하다고 여기는 건강, 가족, 명예 등이 생각났다. 그렇게 5가지를 얻어 꿈같은 시간을 보내던 이 사람 앞에 산신령이 다시 나타났다. 너만 그렇게 행복하게 보낼 수 없으니, 이제 7년마다 하나씩 내놓으라고 하였다. 당신이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외국인은 ‘시간’이라고 많이 대답했고, 우리나라 사람은 ‘가족’이라고 답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는 ‘효’를 중시하고 교육열이 강하며 가족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품고 살아왔다.

그러나 근자의 우리를 보면 가족을 보물로 여기는 것 같지 않다. 산신령에게 이미 가족을 주고 품고 있는 건 ‘돈’인 것 같다. 이혼율이 높아 가족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고, 아동학대로 가족의 사랑이 처참해지며,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의 구성이 요원하다. 사회가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 한국인의 의식구조로서는 가족이 구심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큰일이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있다. 서울의 위성도시에 사는 농사꾼 염재호 씨 일가의 이야기로서 그의 삼남매가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매일 길바닥에 서너 시간을 버리며 서울로 출퇴근하는데, 강남 강북의 서울시민이 아니기에 연애도 서러움을 겪는 신세이다. 지하철 차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젊음이 저무는가 싶어, 마지막으로 뜨겁게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마음먹기도 한다. 동료와 조직에 섞이지 못하고 주목받지도 못하는 존재이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며 다들 돈, 집, 차에 가치를 두며 살기에 덩달아 달렸지만 욕망도 없는 자신을 느끼며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까르르 웃어본 적이 없고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이 가족은 타인에게 착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이에 순응하는 어머니와 삼남매 사이에 소통하는 시스템이 부족했고 개별적 관계도 사랑의 표현이 부족했던 것으로 짐작해 본다. 어쨌든 이렇게 삼형제들은 사랑을 찾아 자신의 행복과 존재가치를 이루려고 한다. 바보처럼 이용당하고 하는 사랑마다 실패하였지만, 점차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자신 안의 힘에서 찾아가는 그들이다. 그러다 삼남매의 어머니가 급사를 한다. 남은 가족은 어머니가 해온 역할을 나눠 하면서 얼마가 그녀가 많은 고생을 하였는지 실감하고, 사라지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하였는지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자신이 가족을 거두고 사는 줄 알았는데 가족이 자기를 거두며 살았던 거’라는 가장 염재호씨의 독백에서 우린 가족이 어떻게 소통해야하는지 알게된다.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에 의해 불행해짐을 막기 위해 우리는 해방을 해야 한다.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일까?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에서 내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돈의 노예가 되어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지옥에서 해방되며, 질병에서 해방되어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사랑’이다. 드라마의 삼남매는 누구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느냐, 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정이 슬픈 家보다 이해하는 家와 사랑하는 家가 되기 위해서, 잃고 나서 후회하기 전에 우리는 잘 해야겠다. 돈, 시간, 건강은 산신령(인간의 운명)이 가져가겠지만 우리가 깨달은 것은 내놓으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신(神)이 흔들며 삶의 수레에서 떨어뜨리려 해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할 것은 가족일 것이다. 사회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와도 가정은 우리를 건사해주는 성소이다. 다스리려고 하지 않아야 할 곳, 요구만 하지 않는 곳임을 알겠다. 우리는 잃고 나서 그 소중한 가치를 사무치게 후회하기 전에 사랑을 표현하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가족과 살아 갈 것이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