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노인, 그 억울한 이름

2022-06-20     경상일보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도 무거울까/ 늙기도 설웨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송강 정철의 시조이다. 생로병사의 108 번뇌중 노사(老死)의 번뇌에 견줄만한 것이 또 있을까? 부모의 무병장수를 기원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이 나라는 초고령화 사회가 되었다. 세기의 배우 알랭드롱을 안락사 하기로 결정했단다. 죽음에 귀천이 있겠는가. 전철을 타면 노인우대와 어린이 우대로 어쩌면 유상승객보다 무상승객이 많은 시대를 맞을지도 모른다.

2022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만 65세 이상은 1957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제대로 먹고 입지도 배우지도 못한 채 일제, 미군정, 한국전쟁을 직간접으로 견딘 사람들. 한이 맺힌 그들은 가난과 무식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자식들을 경쟁으로 내몰았다. 경쟁사회의 자손들은 더 이상 경쟁력없는 다자녀를 낳지 않는다. 인류학적인 반작용인 셈이다. 이른 바 초고령·초저출산 사회(경쟁사회 타파 없이 돈으로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것은 바다에 돌 던져 섬 만들기이다.)의 노인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노인들의 숫자는 2021년 기준으로 약 771만명 정도 된다. 20대 대통령선거의 총유권자 약 4400만 표임을 생각하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권은 노인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공약들로 노인표를 유혹한다. 유형무형의 정책이 집행되고 있고, 국가가 노인들에게 돈을 지급하며 의료혜택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들이 노인문제의 전부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 정책은 금전이나 현물의 급부에 치중한 노인 실생활 환경조성에는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

사적영역을 보자. 실버산업은 노인사회에 적합한 사업이다. 베이비 붐 시대의 유아시장과 같은 이치.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노인보험, 노인의료기기와 건강보조식품 등 실버용품에 대한 광고가 미디어를 도배하고 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이 임종 대기장소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또, 노인용 의료기기와 건강보조식품의 허위·과장광고는 물론 다단계를 이용해 얇은 노인들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국가나 자손들이 어렵사리 마련한 노인부양료가 사기꾼의 잇속을 채우는 셈이니 분통이 터진다.

근거없는 효험, 효과를 부풀린 유투버에 경도된 노인들은 자신이 정상가보다 2~5배의 돈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약보다 더 좋은 식품이 있다고 믿는 분도 많다. 아프면 병원보다 만병통치의 식품에 호도되기 일쑤인 노인들. 이를 악용하는 부정한 행위에 대한 엄격한 단속이 필요하다. 더하여 노인들에게 건전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실버용품에 대한 거래행태를 파악하고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하여야 한다. 물론 노인계몽도 긴요하다. 자식들이나 전문가들의 정확한 조언보다 얄팍한 업체의 상술에 놀아나는 노인들이 한 둘인가? 어린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부정식품 단속보다 노인들을 갈취하는 악덕업체를 엄벌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정보와 판단력이 빈약한 80살 노인들의 표는 훔쳐가도 좋으나 놀림감으로는 삼지말라.

노인의 문제를 가족의 문제로 인식하거나 노인의 고독을 불효자의 패륜으로만 보아서는 아니된다. 평균수명이 60세의 빈곤한 후진국 한국이 입법한 민법상의 부양에 관한 기준을 100세 시대의 잣대로 삼을 수는 없다. 한평생 고난의 대장정으로 걸어 온 노인들이 사기꾼에게 속임당하게 하고 그 화가 자식에게만 전가되게 해서는 아니된다. 인간 존엄의 장엄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맘대로 태어나지 못하였지만 자기 뜻대로 임종할 수 있는 선진한국이 되기를 희망한다. 늙는 설움에 억울함을 더하여서야 되겠는가.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