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57)]하지(夏至) 무렵

2022-06-21     이재명 기자

오늘은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하지(夏至)다. 태양이 이리 높이 뜨니 하루가 더욱 길다. 하짓날의 낮 시간은 무려 14시간 35분이나 된다. 새벽 5시쯤이 되면 벌써 해가 뜨고 저녁 8시가 다 돼서야 완전히 어둠이 깔린다.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은 하짓날을 맞아 세월의 덧없음을 ‘하지(夏至)’라는 시로 읊었다.



달은 삼십일 중에/ 온전히 둥글어 지는 것은 겨우 하루뿐이고/ 해는 일년 중에/ 제일 긴 날은 하루뿐이라네/ 흥망성쇠가 비록 맞물려 있으나/ 흥성할 때는 항상 빠르게 지나간다네



하지는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날이기도 하다. 메밀 파종, 누에치기, 감자 수확, 고추밭매기, 마늘 수확, 보리 타작, 모내기, 늦콩 심기, 병충해 방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날이 긴 탓에 일도 많아진 것일까. 이 가운데 굵고 토실한 감자를 캐는 일은 이 즈음의 복된 일이었다. 피눈물 나는 보리고개를 넘어 감자를 캐는 기쁨은 그 어느 수확보다 가슴 뿌듯하다. ‘천신(薦新)’이라는 말은 새로 농사지은 과일이나 곡식을 먼저 사직(社稷)이나 조상에게 올리는(薦) 의식을 말하는데, 이 중 ‘감자천신’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짓날 조상이나 사직에 감자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정지문 앞에 서서/ 수건을 벗어 펑펑 자신을 때리며 먼지를 털었다// 그 소리가 좋았다/ 나는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먼지를 털고 끓여주시는 국밥이 좋았다// 점심때는 늘 뒷산 멧비둘기가 구구 구구 목을 놓아 울었다/ 마당 가득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텃밭 가득 감자꽃이 피고 지고 있었다/… ‘하지 무렵’ 일부 (유홍준)

하지가 지나면 어김없이 장마가 온다. 벌써부터 제주도에서 장마가 시작됐다고 한다.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는 속담은 이 즈음의 날씨를 잘 말해준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24절기를 절기마다 5일씩 끊어 3후(候:기후)로 나눴는데, 하지의 경우 초후(初候)에는 사슴이 뿔을 갈고, 차후(次候)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반하(半夏:끼무릇·소천남성·법반하라고도 부름)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개구리 소리에 매미 소리까지 겹치면 비로소 봄은 가고 여름이 온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