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위기의 경제 대응, 타이밍이다
불안하고 두렵다. 최근의 가파른 물가상승이 실업률 감소로 이어지는 이른바 ‘R의 공포’가 닥쳐오고 있다. 이는 전통적 ‘필립스곡선’ 이론이 작동하지 않고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넘어 구조적인 ‘경기침체(Recession)’의 늪으로 빠져드는 ‘퍼팩트 스톰’에 직면하는 것을 말한다.
전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물가’의 영향력은 그 범위가 제한적인 ‘일자리’ 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포괄적이다, ‘물가안정’을 ‘통화관리’와 함께 독립적인 중앙은행에 맡기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물가 불안이 모두를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 필자는 과거 공직 시절에 1997년도 외환위기와 2008년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2차례의 경제위기를 직접 겪었다. 당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소방수 역할을 맡았던 경험으로 미뤄 지금의 정책대응을 보는 필자는 매우 아쉽지만 그것이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지난 2008년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고자 미국의 연준이 취한 대대적인 양적 완화 조치가 세계적인 과잉유동성을 가져와 물가 불안을 야기했다. 미연준은 이달부터 코로나19 사태 이후 살포된 9조 달러의 과잉유동성을 회수하고자 이른바 ‘테이퍼링(tapering)’을 검토 중이다. 지난 6월에 발표된 미국 내 소비자물가는 9.1%까지 치솟아 인플레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미 연준은 공격적인 ‘금리인상(tightening)’카드까지 꺼내들어 지난 6월에 이어 이달에도 기준금리를 0.75%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의 가능성을 공공연히 내비친다.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내수시장이 작고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한다. 당연히 세계경제 환경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의 취약성을 띠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수출환경이 악화되고 원자재와 원유의 수입 부담 증가로 인해 국제수지가 악화되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세계적인 고물가는 우리만 피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경기는 위축되고 소비자물가는 6%를 돌파했으며 환율도 1300원대를 넘어섰다.
미국의 금리 상승으로 한-미간 금리 역전 현상마저 생긴다면, 강한 달러를 지향하는 외국자본이 국내에서 빠져나가게 될 것이고 주가 폭락과 원/달러 환율의 급등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외환위기 당시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처럼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은 우리 국민들의 가슴은 지금 두근 반 세근 반이다. 1997년도 위기는 외환 유동성 부족이 해소되면서 해결되었고 2008년도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촉발되었던 만큼 국제적 협력으로 극복되었다. 하지만, 복합적인 요인이 겹치는 ‘퍼팩트 스톰’이 닥치면 그 충격파는 가히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때맞춰 처방을 하고 적기에 정책을 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금융전문가들의 경험과 지식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고 지혜를 빌려야 한다. 경제부처 실무자들의 시행착오 극복 노하우도 참고해야 한다.
범정부적인 종합적인 T/F팀을 꾸려서, 재정-금융-통화-외환-조세등 유관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정책조합(Policy Mix)’을 도출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예견되는 가계부채 악화를 막기 위해 성장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과다한 대출금리 부담 완화를 위한 금융정책 대응과 개인파산 증가에 대비하여 개인회생제도를 현실에 맞게 손 볼 필요가 있다. 환율 안정을 위해 원/달러 통화스왑도 재추진을 검토해야 한다. 한은이 취한 0.5%p라는 ‘빅 스텝’의 금리 인상조치는 기대인플레 차단과 한-미간 금리 균형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본다.
경제는 ‘심리’다. 시장의 불안심리(fear)가 확산되기 전에 먼저 선제적인대응이 있어야 한다. 예상보다 강한 대책으로 정부의 확고한 정책의지를 타이밍에 맞춰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박대동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