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42)]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바라만 봐라

2022-07-22     경상일보

정유일(鄭惟一 1533~1576)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그는 젊은 날에 도학(道學)의 병에 빠져 있었다. 그는 도학에 미친듯이 몰두하면 1~2년 안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퇴계는 그런 정유일이 안타까웠다. 마음의 병은 과욕과 서두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퇴계는 정유일에게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했다. “조존(操存)과 성찰(省察)의 공부도 그만 잊어라”고 했다. 조존은 마음이 대상과 교섭하지 않을 때 그 순수한 본체를 유지하는 것이고, 성찰은 대상과 교섭한 이후에 그 발현의 적절성을 점검하는 것이다. 조존과 성찰은 성리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수양법인데, 퇴계는 이것을 그만두라고 한 것이다.

정유일은 퇴계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빨리 얻을 수 있을까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심지어 도학의 수양 방법조차 버리라니. 그렇다면 더는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면 일상의 오염된 삶에 만족하면서 살라는 뜻인가. 퇴계는 그런 정유일에게 말했다. “마음을 파고들지도 말고 버려놓지도 말고, 그저 바라보라. 그러는 중에 무언가가 길러지고 성숙해 갈 것이다.” 퇴계는 자신을 향한 관찰을 기대 없이 지속해 나가다 보면 마음의 병은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라고 했다. 정유일은 훗날에 대사간과 승지 등을 지냈으며, 퇴계의 제자로서 성리학의 이기이원론을 발전시켜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계승하고 추종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병을 지니고 있다. 병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과욕과 서두름, 그로 인한 심리적 억압과 불안감 때문이다. 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체로 우선 병의 원인을 찾아서 자기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그런데 마음을 파고들면 들수록 병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빠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마음에서 벗어나서 그저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자기 마음을 바라만 보면 병은 저절로 나을 것이다. 본래 집착은 마음을 힘들게 하고, 포기는 상황을 어렵게 한다. 마음 안에서 마음을 찾지 말고 마음 밖에서 마음을 찾아야 할 것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