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34)]군불과 아궁이

2020-01-06     이재명 기자

어제는 소한(小寒)이었다. 절기상 대한(大寒)이 가장 추워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한이 더 춥다. 중국에서 들어온 절기(節氣)는 황하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에 얼어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죽은 사람은 없다’라는 속담은 이 즈음의 날씨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말해준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소한 무렵이면 군불이 일상화된다.



군불을 지핀다/ 숨쉬는 집/ 굴뚝 위로 집의 영혼이 날아간다/ 가출(家出)하여, 적막을 어루만지는 연기들/ 적막도 연기도 그러나/ 쉬 집을 떠나진 않는 것/ 나는 깜빡 내/ 들숨 소리를 지피기도 한다. ‘군불을 지피며 1’ 전문(장석남)



국어사전에 의하면 군불은 ‘음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방을 덥히려고 아궁이에 때는 불’이다. ‘군불’의 ‘군’은 ‘없어도 되는’ 또는 ‘쓸데 없는’ 등의 뜻이 있다. 예를 들어 ‘군살’은 몸에 붙은 지방 덩어리를, ‘군식구’는 가족 외의 식구(食口)를, ‘군것질’은 굳이 안 먹어도 되는 음식을, ‘군더더기’는 쓸데없이 덧붙이는 말을, ‘군음식’은 과자·과일 따위의 끼니 외에 먹는 음식, ‘군소리’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의미한다.

군불은 어의상 구태여 때지 않아도 되는 불을 의미하나, 요즘 같은 소한 무렵에 군불이 없으면 병원 신세를 지기 십상이다. 군불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군불은 ‘새벽불’이다. 새벽녘 아랫목이 싸늘하게 식어갈 즈음 아버지는 말없이 방을 나와 군불을 땠다. 유년의 필자는 ‘더 자라’는 아버지의 말을 귓전으로 들으면서 달디 단 새벽잠으로 빠져들곤 했다.

군불은 아궁이가 있어야 땔 수 있다. 이 아궁이에 나무가 타들어가면 마치 지옥불을 연상케 한다. 아궁이 안에 넘실대는 불길이 마치 아귀를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궁이의 옛말은 ‘아귀’다. 그러나 인도 산스크리트어를 찾아보면 아궁이는 인도의 불의 신인 ‘아그니’에서 나왔다는 것이 지배적인 설이다.

아그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이다. 인도에서는 어떤 신에게 제사를 지내건 그 신에게 바치는 제물은 모두 아그니를 통해 전달된다.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불에 던져 넣으면 그 제물은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 또는 연기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 신에게 전달된다.

조만간 울산에도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칠 것이다. 추울수록 아궁이는 그립다. 군불은 굴뚝 위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