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71)]김천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고향 잃은 탑과 마주한다. 김천시 남면 금오산 서쪽 갈항사 절터에 동서 방향으로 있던 쌍탑이다.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으로,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오랜 타향살이를 한 탓인지 늦은 오후의 짙은 그림자를 끌어안은 두 탑은 쓸쓸하다.
갈항사 삼층석탑은 이층의 기단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이다. 불국사 석가탑의 담백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이어받아 간결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동탑의 기단부에는 유려한 필치로 새긴 명문이 있어 건립연대와 조성 배경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758년(경덕왕 17년)에 원성왕의 생모와 이모, 외삼촌인 언적법사 등 삼남매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이두문을 사용한 점에서 석탑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유물로 국보 제 99호다.
갈항사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된 사찰이다. 신라 고승인 승전법사가 창건하고 돌무더기를 도반삼아 화엄경을 강론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갈항사는 동서 삼층석탑을 세우고, 황금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중창하면서 더욱 번창했다. 언제 폐사되었는지 기록은 없다.
이상적인 비례로 만들어진 탑이 있던 자리는 어디쯤이며 승전법사가 화엄경을 강론했다는 돌무더기는 남아있을까? 의문을 품고 김천의 금오산 아래 갈항사지를 찾았다. 절터에는 석탑이 있었던 곳을 표시하는 표지석 2개가 감나무 밭 가운데 동서로 있다. 나무와 풀에 가려진 표지석은 삐죽하게 돋아난 아픈 상처처럼 보인다. 신라 왕실의 비호를 받아 번창했던 옛 모습은 오래 전에 스러지고 없다. 화엄경 강의를 들었다던 돌도 승전법사를 따라 입적을 했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 뜰에서 두 탑을 마주 할 때 보다 더 외롭다. 그러나 석굴암 본존불을 닮은 오봉리 석가여래좌상이 석탑이 있던 자리를 무심의 경지로 바라보고 계신다.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된다.
마음속으로 수백 수천 번 탑을 쌓았다 허물기를 반복하다 좁은 산길을 내려온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