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2022 윔블던 테니스 결승전 관람 소감

2022-08-03     경상일보

팬데믹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부모를 격려하고자 한 아들 덕분에 영국 여행을 하면서 지난 7월10일에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을 관람했다.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센터 코트(CENTRE COURT)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권위 있는 대회임이 실감났다. 코트 입구에 테니스하는 모습을 한 동상 앞에서 깔끔하게 정장을 한 나이 지긋하신 분이 입장하는 사람을 촬영해 주고 있다. 우리도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한국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해 본다.

경기장에 입장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에 압도당했다. 야구장과 축구장은 익숙하게 보아왔지만 이렇게 큰 테니스 경기장은 처음이다. 그래도 경기시작 30분전에 이미 만석이다. 게임은 정각 2시에 시작된다.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와 호주의 닉 키리호스가 맞붙는다. 조코비치는 6차례나 우승을 한 경력이 있는 선수, 키리호스는 악동으로 소문나고 처음 결승에 나온 선수다. 경기가 시작됐다. 천연 잔디구장이라 볼이 속도가 워낙 빨라 강한 서비스는 눈이 공을 따라 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193㎝의 키리호스의 서비스 볼이 188㎝의 조코비치보다 더 강하고 빨라 서비스 에이스가 더 많았다. 두 선수의 강한 스트로크와 백핸드는 정말 멋지다. 키리호스는 소문대로 경기가 안 풀리면 짜증을 내는 소리가 관중석까지 들린다. 나도 사실 악동인 키리호스보다 인격이 갖추어진 조코비치를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1만5000명의 관중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가 득점을 하면 모두가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응원했다. 옆에 앉은 영국인 내외는 키리호스가 약자인지 같은 영연방 선수라서 그런지 열심히 키리호스를 응원한다. 관중들이 조용하지 않으면 심판은 “생큐”라는 말만 3~4차례 하니 이내 조용해진다. 볼보이와 볼걸은 항상 공을 주워서 선수에게 줄 준비를 하는데 마치 100m 달리기 선수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같다. 그들의 진지한 태도에 가슴이 뭉클해 왔다. 아마 그들도 대선수를 꿈꾸리라. 선수가 쉬는 동안에 큰 양산을 받쳐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조코비치가 3대1로 이겨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경기를 끝낸 뒤 옷을 갈아입을 때 보인 조코비치의 몸은 마라톤 선수와 비슷했다. 얼마나 자신의 관리에 투철한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조코비치는 우승한 후 특유의 ‘비행기 세레머니’를 한 뒤 구석진 3층으로 올라가 지인들과 아내, 딸과 포옹했다.

시상식은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가 한다. 윌리엄 왕세손도 보이고 톰크루즈도 로얄석에 있었다고 했다. 우승자와 준우승자 모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서로를 칭찬도 하고 농담을 하며 크게 웃는 모습이 좋아 보이고 특히 세손비와 조코비치도 서로 거리낌없이 말을 주고 받았다. 방송과 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관중이 모두 보는 가운데 관중석까지 들리도록 말을 주고 받으며 그에 따라 관중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즐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도 야구 축구를 비롯한 모든 경기에서 이러한 모습을 도입하면 선수와 관중 간의 소통이 좀 더 잘 되고 선수와 팬들의 관계가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마침 윔블던대회 14세부 이하 남자 단식에서 조별 리그부터 5전 전승으로 우리나라 조세혁 선수가 우승을 했다. 조세혁은 인터뷰에서 조코비치의 스트로크와 인성, 멘탈을 닮고 싶다고 한다. 그가 10~15년 후 이 윔블던의 센터 코트에서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슴에 담고 관중들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 나온다.

그 후 가이드의 말을 빌리면 영국 남자들에게 축구는 우상이고, 신앙이며, 숙명이라고 할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TV를 통해 본 그들의 다소 광적인 축구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박지성 선수와 손흥민 선수의 활약 덕분에 영국 남자들이 우리나라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길가의 식당에서 만난 남자들 역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모두 손흥민(쏘니) 선수의 이야기를 하면서 넘버원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도 호감을 보여 흐뭇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날이다.

박흥수 전 울산시교육청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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