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공간에 새겨진 시간

2022-08-03     경상일보

실제 공간은 실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곳을 찾는 우리에게 공간에 새겨진 시간을 이야기한다. 공간에 담긴 시간을 듣기 위해선 그곳을 찾아 그곳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19년 나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아이들과 함께했다.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했던 이 활동은 2박3일간 교육청 주관으로 진행된 평화 공감 독서토론 캠프였다.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100명쯤 참가해 기차와 버스로 이동하며 기차 안에서 남북 분단에 대한 독서토론을 비롯해 분단의 시간이 새겨져 있는 현장(임진각, 도라산역·전망대, 캠프 그리브스, 판문점, 광화문 일대 한글 가온길)을 찾아 역사적인 순간들을 만나는 체험활동이었다.

우리의 목적지였던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대한민국 행정구역상으로는 1972년까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였으며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공식적으로는 쌍방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곳.

인원 제한으로 캠프에 참여한 친구들이 다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한 모두는 나와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진지할 수밖에 없었고 숙연하게 분단의 아픔과 현실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나에게는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에서 북쪽의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남쪽의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중립국감독위원회 소피 장(이영애)의 주재에 따라 대질신문을 받던 곳으로 기억되는 공간. 실제로는 뉴스에서만 보던 그곳에 직접 들어가서 남쪽도 북쪽도 아닌 공간이 주는 분단의 의미를 되새긴 경험은 지금도 나의 온몸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곳은 비로소 내 삶에서 실재하는 공간이 되었다.

물리적 공간은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이 중첩된다. 그리고 미래가 현재로, 다시 과거로 쌓여 하나의 물리적인 공간에는 우리들의 의지와 생각이 투영되어 지난 시간 위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의미가 새겨진 실제 공간으로 들어가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은 우리들로 하여금 공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신호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삶을 확장할 수 있게 한다.

교육청 주관으로 해마다 진행되고 있는 평화 공감 독서토론 캠프는 아이들에게 공간에 새겨져 있는 지나온 시간을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은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못했으나 당일 체험활동으로 2019년에는 부산과 대구로 운영되었으며, 올해는 8월27일 칠곡으로 캠프활동을 계획 중이다. 앞으로 코로나 상황이 나아져서 다시 더 많은 학생들이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하고 분단의 시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분단이 자기 삶에 실재하는 문제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이현국 학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