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72)]김천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

2022-08-12     경상일보

“탑이 아니고 춤을 추러 간다고요?” 수화기 저편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조금 뜸을 들이더니 승무를 배우냐고 물었다. “승려가 추면 승무고 내가 추면 몸 가는 대로 추는 막춤이지요.” 그 여자는 쿡 웃었다.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국사는 산을 올랐다. 계곡을 지나 능선을 오르내리다 눈 앞이 탁 트이면서 일망무제 펼쳐진 연화세계를 본다. 풍수지리의 시조인 도선은 이 터가 명당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관음전 마당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 대적광전에 이르러 뒤를 돌아다본다. 아, 이거구나. 멀리 중첩한 산이 펼쳐지고 그 너머에 가야산 상왕봉이 연꽃 한 송이로 피어난다. 불가에서는 연화봉이라 부른다. 산 아래 속세간은 폭염으로 활활 타는데 암자 마당에는 서늘한 바람이 분다. 팔이 절로 움직이고 두 다리가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그럼, 나도 춤추러 왔지.

수도산이 1317m, 정상 부근에 기댄 암자는 1080m다. 이 높은 곳에 보물로 지정된 두 기의 탑이 있다. 대적광전 앞의 서탑과 약광전 앞에 선 동탑이다. 쌍탑이라 하기에는 탑 사이가 너무 멀다. 모양이나 크기, 조각기법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춤추듯 두 탑을 오가며 다른 그림 찾기를 한다. 동탑 일층 몸돌에는 사방에 감실을 만들어 연꽃대좌 위에 돋을새김한 여래좌상을 모셨다. 수도암 삼층석탑의 압권이다. 서탑의 일층 몸돌에도 여래상을 새겼는데 투박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 같은 그림을 찾아내고 괜히 흐뭇하다. 법당의 좌복들이 밖으로 나와 햇볕 소독을 하고 있다. 삼층석탑 보호 철책에 빙 둘러 앉은 좌복의 수가 양쪽이 동일하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여 다름을 구분 짓는 일은 얼마나 아둔한 생각인가를 탑에게 경배를 올리는 좌복이 가르쳐준다.

한 스님이 선방을 나와 관음전을 향한다. 모시 장삼자락이 춤추듯 흔들린다. 그 뒤를 바람이 염불 장단으로 일렁일렁 따라간다. 상사화도 살짝 꽃잎을 연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