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울산 의료환경의 숨은 맥락
얼마 전 안타까운 일이 하나 있었다.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에게 뇌출혈이 왔지만, 해당병원에선 일시적으로 당직의사가 부재중이라 다른 병원으로 전원 보냈고 결국 사망한 일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국내 최대 병원에 수술의사가 없는…’ ‘OO병원도 속수무책…’ 등등 자극적인 문장을 앞세운 기사들이 쏟아지며 이슈화되고 있는데, 읽어보면 그 이면 관계까지 깊이 파악한 기사는 잘 없다. 그럴 만하다. 그 상황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기도 힘들고, 의료 쪽이 생각보다 복잡해서 드러난 사건의 원인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결국 지면이 아니라 신문을 통째로 써도 모자라게 된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중증질환을 다루는 진료분야, 소위 ‘필수의료’의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 사건이 여기저기서 다뤄지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도 이런데 다른 곳은 어떻겠는가?’는 부정적인 시각이 계속 쌓이는건 조금 걱정된다. 사실관계를 너무 압축, 생략한 시각인데다 서울을 넘어 지역의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듯해서이다. 지역민 입장에선 ‘OO병원에서도 힘든 일인데 여기에 있는 병원들이라고 될까?’ 이런 생각이 당연히 들 수 있다. 그래서 울산의 현 의료환경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
111만 인구 울산에는 1000개가 조금 넘는 병원들이 있다. 이는 치과를 제외하고 의원, 병원, 요양병원, 종합병원을 다 합친 숫자다.
그 중 종합병원급 이상은 대학병원 1, 종합병원 7개다. 광역시 중 규모가 그나마 가까운 대전(144만, 대학병원 3, 종합병원 6)과 광주(143만, 대학병원 3, 종합병원 8)에 비교해보면 많다고 보긴 힘들다.
병원들이 다룰 수 있는 중증도는 어떨까?
단적인 예로 위의 뇌출혈(정확히는 지주막하출혈)을 포함한 뇌혈관질환의 경우 현재 동구의 울산대학병원, 중구의 동강병원, 그리고 필자가 있는 남구의 울산병원 이렇게 3곳에서 대처가 가능하다.
이 숫자가 적은지 많은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조금 부연하면 이 병은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같이 시스템적으로 일할 수 있는 팀이 필요하고 진단할 수 있는 영상의학장비와 중재술을 할 수 있는 시술실, 두개골을 열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실과 클립 및 마이크로스콥 등의 장비도 필요하다. 수술이 잘 돼도 예후가 보장되는 병이 아니기에 진료과 간 협진 등 이후에 필요한 요소들도 많다. 병원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춰야 가능하다.
만약 중증질환을 다루는 병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느낀다면, 다음의 내용을 고려해주면 좋을 듯 하다. 울산의 의료환경은 지역적인 맥락이 크다. 울산은 대전과 광주 등에 비해 환자의 지역외 유출이 많다. 지리적으로 부산에 가깝고, 서울로도 유출이 많다. 특히 경험상 암의 경우 부산도 아니고 무조건 서울로 간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서울은 도시 자체가 브랜드이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지역 내에서 배출되는 의사도 잘 없다. 울산대 의대가 서울에서 의대 본과를 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이상의 중증질환을 다루려면 일정한 규모를 넘어가야 하는데, 울산은 그런 병원이 자생적으로 생겨나 유지되기엔 좋지 않은 환경이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울산의 병원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조금씩 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가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필수의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이런 울산의 의료환경에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로 촉발된 관심이지만, 의미있는 변화로까지 계속 이어지기를 조용히 기대해본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