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마을안길’ 문제, 당장 해결해야

2022-08-25     경상일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새마을 노래 2절 첫머리 가사다. 이 노랫말처럼 50여 년 전 주민들이 합심해서 넓힌 길이 요즘 수난이다. 아니, 50년간 평화롭게 쓰던 길을 막는 이들로 인해서 마을은 소송바람으로 준 전시상태다.

1970년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마을의 안길은 새마을운동으로 대부분 넓혀졌다. 그 모습은 어느 마을에서나 확인할 수 있다. 지적도에는 폭 1~2m 남짓한 국유지 도로가 있는데, 실제 마을에 가보면 폭 3~4m 정도의 도로가 있다면 이는 십중팔구 새마을 사업으로 넓힌 도로다.

그러면 마을안길은 어떤 방식으로 넓혔을까. 나이가 70대 이상인 주민이면 대부분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즉, 노래 가사처럼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안길을 넓혔기 때문에 길의 선형이나 폭은 동네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마을 어른과 주민들이 결정했다. 달리 표현하면 마을안길은 모든 주민의 합의와 협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면 왜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모든 잘못은 행정에 있다. 지난 50년간 주민 스스로 넓혀서 이용해온 길에는 상수도와 하수도가 깔리고, 전기와 전화가 들어오고, 자가용과 구급차량, 농기계도 편하게 출입하고 있다. ‘사실상 도로’인데, 정작 행정은 지난 50년간 전답을 도로로 바꾸는 지목정리도, 현황도로의 경계를 측량하지도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 결과가 ‘도로로 쓰이는 정확한 토지 규모를 모른다’ ‘예산이 없다’ ‘길을 만들어줄 법적근거가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한다.

법적 근거도 행정이 만드는 것이고, 예산편성과 집행 우선순위도 주민이 아닌 행정이 만드는 것인데, 행정기관은 직무유기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주장을 하면서 주민의 고통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마을에서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마을 안길이 만들어진 과정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르는체하는 양심 없는 주민이 나타날 때 발생한다. 대부분의 주민은 ‘우리 땅도 10평이 도로에 들어갔다’고 속으로 되 뇌일 뿐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내 땅 찾겠다고 길을 막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을 안길에는 다른 주민의 땅도 포함되어 있고, 나 역시 넓어진 마을 안길이 주는 편익을 함께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황당한 일은 정작 타인의 통행을 막으면서 50년 전으로 길을 되돌리는 그 사람도 다른 사람 소유의 도로 아닌 토지가 포함된 마을 안길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실상 건축이 불가능한 맹지나 다름없는 자신의 토지를 다른 주민의 호의에 기대어서 제 값을 받고 매매까지 하면서 정작 자신의 토지를 찾겠다고 길을 막는 사람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결국 보호할 필요가 없는 이런 파렴치한 일부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마을 주민 모두가 고통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행정은 한시라도 빨리 갈등이 있는 마을 안길부터 현황측량을 하고, 토지소유주에 대해서는 보상이 아니라 취득시효를 주장해야 한다.

특히, 국유지를 넓혀서 만든 마을안길은 특정인의 희생이 아니라 주민 모두의 공동부담으로 만들어서 함께 편익을 누려왔고, 행정기관은 50년간 실효적 지배를 해왔기 때문이다.

도로는 공공기물이다. 주민들의 도로를 주민들에게 제대로 돌려주는 일은 행정의 의무이자 고유한 권한이다. 현대사회에서 도로는 문자 그대로 주민의 ‘생명선(life line)’이다. 일정 규격의 도로가 없으면 건축허가도 나지 않으며, 생활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반대로 도로가 제대로 갖추어지면 건축행위가 이어지고 인구도 늘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민생활의 기본권이라고 할 마을안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책임 있는 행정기관이 아니다.

50년 전에 주민이 스스로 만든 길을 행정이 뒷받침하지 않아서 소송 폭풍 속으로 주민들을 몰아넣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마을 안길 문제를 더 이상 법원판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각 구·군이 당장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세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과제 중에 하나가 마을 안길 문제다.

한삼건 울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