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울산역(통도사)의 추억
물이 양(羊)에게는 물이지만 고기에게는 집이다. 동일 객체라도 주체에 따라 근본인식이 다를 수 있다. KTX 울산역의 문서상 명칭은 ‘울산역(통도사)’이다. 정식명칭을 따지자면 두 개 다 맞다. 출발지·역사의 전광판은 앞의 것으로, 승차권·승강장 안내표시 등은 뒤의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2010년에 출간된 코치와 록우드(R. Koch & G. Lockwood)의 공저 <낯선 사람 효과>(원제
유사한 맥락으로, ‘세상 참 좁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미국 제 44대 대통령(2009~2017) 오바마는 흑인이고 그 앞 부시 행정부 부통령 딕 체니는 백인이다. 정치 이념도 진보(민주)와 보수(공화)로 대립적이다. 그런 그들의 6대 조상이 같다고 한다. 두 사람이 멀지 않는 친척이라는 얘기다. 오바마는 또 백인인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과도 10대조쯤의 조상이 같은 혈연관계라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좁은 세상이 막막하고 낯설 때가 있다. 위 책에서 ‘작은 세상’이 소개되던 그 해 하반기에 KTX 울산역도 개통됐다. 역 명칭은 그 전에 지어져야 했다. 울산광역시와 지역 ‘역 명칭 선정위원회’가 다양한 논의와 여론조사 등을 거쳐 ‘울산역’으로 정했다. 기존의 울산역은 태화강역으로 바꾸기로 했다. 어느 날 인접한 양산시에서 협조요청이 왔다. 역 명칭에 그 관내의 ‘통도사’가 표시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양산에는 KTX역이 없고 통도사는 울산역이 제일 가깝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광역행정 차원에서 다각도의 검토를 했다. 결국 통도사 방문 편의 등을 위해 ‘울산역(통도사)’로 최종 결정해 중앙(철도공사)에 건의했다.
며칠 후 갑자기 정장차림 수십 명이 시청사에 몰려왔다. 지역 기독교계 인사들이었다. 공공시설 명칭에 특정 종교시설 이름이 붙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아! 이런 시각이 있다니…!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통도사를 국보 자산으로 보고 명칭의 정체성·편의성 등을 검토했으나 종교시설의 관점은 거론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앙 심의절차가 기독교계의 반대와 집단 저지 등으로 몇 번 중단되는 동안, 상황을 알게 된 통도사측의 맞불 단체행동조차 시도되었으나 종교 대립으로 번져서는 안 되겠기에 힘들게 말렸다. 심한 진통 속에 결국 ‘울산역’으로 하되 ‘(통도사)를 부기’하는 안으로 절충되었다. 그래서 외부 전광판에는 울산역으로 쓰고 승차권과 승강장 등에는 통도사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기독교계와 소통하기 위해 지역 조찬기도회에 참석하던 기억이 선하다.
인간의 거리는 ‘6단계 분리이론’의 주장처럼 의외로 가깝고 빠르게 좁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각의 회로는 바로 이웃과도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집 그림을, 살아만 본 사람은 지붕부터 그리지만 지어 본 사람은 주춧돌부터 그린다고 한다. 같은 사안도 접근방법이 정반대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나라 일은 다면성이 본질이다. 하나의 사건이 전혀 다른 이해에 관계되고 아무도 예상 못한 반응을 낳기도 있다. 특히 제도나 시책 결정에는 다양한 주민들의 공약수(公約數) 접점에서 시각과 입장들이 다를 수 있고 또 언제 표출될 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행정은 언제나 나무도 보고 숲도 보고, 위도 보고 아래도 보는 입체적 접근이 긴요하다.
전충렬 전 울산부시장·행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