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41)]종교의 상업화

그리스(4)
파르나소스 산 남쪽에 자리한 델포이
신탁장소로 지중해권서 큰 명성 얻어
각국서 바친 봉헌물로 보물 넘쳤지만
그리스의 멸망과 함께 폐허로 남겨져

2020-01-09     경상일보

리스하면 떠오르는 책이 있다. 읽을거리라고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싸구려 잡지밖에 없던 시절, 다락방 작은 책꽂이에 무심히 꽂혀있던 ‘그리스 신화’. 그 한권의 책이 서양세계를 이해하는 마법의 문이 될 줄 그 당시에는 몰랐다. 낯선 언어와 괴상하고 긴 이름들, 웬 신들이 그리도 많던지. 도대체 신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은 욕심 많고, 고집 세고, 까탈스럽기가 인간보다 더한 존재였다. 그들이 인간과 다른 점은 초능력과 불사의 존재라는 것 뿐이다. 소위 신이라는 자들이 벌이는 해괴한 짓들은 만화적 상상력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에게 희랍인으로 알려진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이야기들을 꾸며냈을까. 긴 세월을 지나 지중해의 역사 속에서 에게해를 인식하기까지 그 실마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에게해에 떠있는 수많은 섬들, 자신들을 헬라인(Hellenes)이라고 부르던 그리스 선조들의 터전이었다. 무역과 상업으로 바다를 누비던 그들은 주변의 선진문명과 쉽게 접촉할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기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해 갔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종족과 문명의 경험들이 신화로 꾸며졌을 터, 인성을 감추지 않는 신의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들에게 신은 선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존재였다. 심지어 인간을 질투하거나 겁탈하거나, 인간사를 두고 내기를 하는 등 고약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대신 인간에게 특별한 도덕적 규범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신성을 모독하지 않는 한 인간사에 간섭하는 일도 없었다. 사상을 간섭하던 종교권력도, 사제계급도, 강력한 교리도 없었으니 철학, 문학, 예술에서 인간중심적 가치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만 예지력이 있으니 답답하면 찾아가 미래를 묻거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용한 무당이 모시는 신령이라고나 할까.

리스에서도 델포이(또는 델피)는 계룡산 자락처럼 신통한 무당이 많기로 소문났던 모양이다. 델포이는 2457m 파르나소스 산의 남쪽 절벽 밑에 자리한다. 울퉁불퉁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절벽이 병풍처럼 고대도시를 감싸고 있다. 마침 비가 그치고 운무가 절벽을 휘감으며 피어오르니 신령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앞에는 거대한 분지형 계곡이 멀리까지 웅장하게 펼쳐진다. 절벽은 중간이 움푹 파여 동서쪽으로 갈라지며 남쪽에서 오는 햇빛을 모아주는 형국이다. 배산임수의 천하명당이 아닐 수 없다. 고대인들이라고 그 영험한 장소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을까. 델포이가 신탁의 장소로서 지중해권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우선 장소의 기운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델포이 성소의 동쪽 구석에는 깊은 계곡이 있어 그곳이 지하세계로 가는 문이라 믿었다. 여기에 카스탈리안이라는 샘이 있는데,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세계로부터 흘러나온다고 믿었다. 신탁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정화의식을 행했다. 델포이는 천상과 지상, 지하를 연결하는 우주 축(cosmic axis)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배꼽’(옴팔로스)이라고 부르는 돌은 그리스인들이 이곳을 우주의 중심으로 인식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곳의 신탁이 용하다는 소문은 기원전 6세기 이전에 이미 지중해 세계에 자자했던 모양이다. 경향 각지를 불문하고 많은 나라에서 신탁을 받으러 찾아왔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차원의 사신들까지 줄지어 모여들었다. 국가적 대사를 앞두고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할 때 신의 뜻으로 포장된 신탁이야말로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신성한 권위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신탁은 추첨에 따라 순서를 정하지만 봉헌물에 따라 우선권이 주어지기도 했다. 우선적으로 신탁을 받기 위해 각 나라마다 봉헌물을 보관한 보물창고를 앞 다투어 건립했다. 도시는 각지에서 바친 금, 은, 귀금속으로 만든 동상, 승리의 트로피, 기념비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작은 시골마을이 부유하고 화려한 도시로 변해갔다.

역의 중심에는 아폴론 신전이 자리한다. 현재의 건물유적은 기원전 330년에 완성된 것인데, 이마저 지진으로 파괴되어 몇 개의 기둥만 남았다. 굵직한 도리아식 기둥들만으로도 과거의 웅장함을 증언한다. 신전 안에는 황금으로 만든 아폴론상이 있었고, 한 방에서 ‘파티아’라고 부르는 신녀가 신탁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도시가 번성하면서 위락시설도 갖추어졌다. 그리스인들이 즐겼던 연극공연을 위해 대규모 극장을 건설했다. 5000명을 수용하는 대규모의 극장이 산의 경사면을 이용해 아늑하게 설계되었다. 그리스 시대 극장 중 최고로 손꼽힐 만큼 우수한 건축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객석만이 남아있고 그나마 로마시대에 다시 지은 것이다.

잘나가던 델포이도 그리스제국의 멸망에 따라 명운을 함께 했다. 도시를 빛내던 보물들도 침략자들에게 약탈당해 사라졌다. 베네치아 성마르코성당 전면 지붕에 장식된 사두마차도 원래는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탈취해 콘스탄티노플로 가져갔다가 4차 십자군전쟁 때 이를 약탈해 베네치아로 가져간 것이다. 이스탄불 히포드롬 광장에 서 있는 청동기둥도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남의 운명을 점치며 영화를 누리던 델포이, 이제는 폐허로만 남겨졌다. 명당이면 무슨 소용인가. 땅의 기운을 받을 만한 인간이 진짜 주인인 것을. 남의 운명은 용하게 맞추면서 정작 자기 도시의 미래는 몰랐던 것 아닐까. 신녀 방에 걸려 있었다는 글귀를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라.’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