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큰아버지 ‘안전거리’ 준수해주세요”
언제나 그렇듯 명절 연휴가 지나면 막연한 아쉬움과 일상의 낯설음이 다가온다. 농경사회에서는 이웃이 친인척이고 친인척이 이웃이었다. 일과 생활도 함께 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명절 아니면 친인척을 볼 일이 잘 없고 친인척이 평소에 일과 생활을 같이 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그러다보니 명절을 지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마치 외국으로 여행다녀오는 것처럼 낯설고 단절적이다.
명절 연휴의 파장과 여운은 제법 길게 간다. 좋은 파장과 여운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명절 후 변호사 사무실에 갑자기 늘어나는 문의가 있다. 바로 이혼문제, 상속문제, 토지분쟁, 명예훼손 같은 친인척간 분쟁에 관한 일이다.
명절 연휴 오래간만에 친인척이 모인 자리는 반가움도 크지만 묘한 긴장감도 흐른다. 성공하면 ‘금의환향’한다고 하는데, 그 만큼 가까운 사람에게는 작은 성공이라도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이리라. 그렇기에 누군가는 자식 자랑, 돈 자랑, 성공 자랑에 여념이 없다. 반대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시기심과 질투심, 자존심도 더 커지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다보니 다른 누군가는 그 자랑을 마냥 축하해주기보다는 민감하게 시기한다. 누구 자식은 뭐하느니, 누구 자식은 뭐하느니, 불필요한 비교와 악의적 관심이 오랜만에 모인 ‘낯설지만 가까운 그대’ 사이에 떠다닌다.
문득 생각하게 된다. ‘오랜만에 귀한 사람들 만났으니 서로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덕담해주면 될텐데’ ‘속된 말로 남도 아닌데 재산다툼은 양보할 수도 있을텐데’….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 조차 이기적이다. 남이 내게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남이 아니라 내가 먼저 마음을 바꾸는게 훨씬 쉽다. 내 마음을 바꾸고 남이 하는 말에 덜 상처받는 법을 익히고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으면 그 것이 현명함이다. 물론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게 너무 어렵다. 남에게 조언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행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남의 일에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자기 일에는 그렇게 어리석기 쉽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현명함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는 말자.
친인척 간 관계 설정에 현명함을 찾으려는 노력의 첫 번째로 ‘안전거리’를 제안해보고 싶다. 어떤 영화를 보니 ‘넌 나에게 모독감을 주었어.’라고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서로 간 큰 기대가 없는 사이라면 ‘기대’가 크지 않지만, 가까운 사이에는 상대가 가까운 만큼 나에게 더 잘해주어야 하고 먼저 양보해야한다는 기대감을 가진다. 상대도 똑 같이 내게 그런 기대감을 가질 것이다. 서로가 그렇게 ‘가까우니 니가 양보해라.’는 기대감을 가지면 당연히 서로가 틀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까운 사이에는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시기심과 질투심이 폭발력을 가지게 된다. 별일 아닌데도 괜히 ‘넌 나에게 모독감을 주었어.’라며 흥분하고 작은 사안을 확대해석하며 스스로 피해자이자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으로 정의내려 합의점 없는 다툼으로 몰고가 버린다. 이런 이유로 친인척 간 분쟁은 감정 싸움이 되어 조율이 더더욱 어려운 특징이 있다.
왜 이럴까. ‘가깝다’는 것을 ‘이기적’으로 해석해서 생긴 일은 아닐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대사회에서 친인척은 사실 가깝지 않고 낯선 사이이다. 일상생활과 일을 같이 할 일이 거의 없는 낯선 사이인데 가깝다는 착각 속에 불필요한 기대를 가지고 불필요하게 비교와 시기를 한다. ‘친인척’이 가까운 사이가 아니지만, 명절을 맞이해서 서로 존재를 잊지 않고 지내자는 정도로 반갑게 맞아주는 것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상대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시기심은 덜하지 않을까. 필자는 사건을 다룰 때, ‘사람 사이는 가로등 없는 밤길을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마다 상대적인 안전거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충돌이 발생하기 쉽고, 안전거리 이상으로 너무 멀어지면 상대가 보이지 않고 나도 길을 잃기 쉽습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친인척 간 언행을 나눌 때도 ‘안전거리’를 생각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