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46)]긍정적인 시기 질투

2022-09-16     경상일보

러시아 속담에 ‘이반의 염소’라는 것이 있다. 옛날 러시아의 한 시골 마을에 염소 한 마리를 키우며 젖을 짜 생활하는 이반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이반의 염소는 매일 많은 젖을 생산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같은 이반의 염소를 부러워했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천사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에게도 이반의 염소 같은 염소를 갖게 해달라고 하는 대신 이구동성으로 이반의 염소를 죽여 달라고 말했다.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가 시기 질투이다. 그런데 시기 질투는 그 감정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서 양날의 칼이 된다. 시기(猜忌)는 샘을 내 그 사람을 꺼리는 마음이고, 질투(嫉妬)는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을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는 마음이다. 시기 질투는 저절로 드는 마음이니 그것은 어찌할 수 없다. 시기 질투의 마음이 들 때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준다면, 내가 상대방처럼 또는 그 이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그 시기 질투는 내게 긍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을 미워하여 깎아내리려고 한다면 내게 부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시기 질투의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푸는 경우가 많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그렇다. 가난한 사촌보다는 잘 사는 사촌이 있으면 든든하고 심적 부담이 없다. 친구도, 이웃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위에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많으면 덕을 봤으면 봤지, 손해 볼 일은 없다. 사촌이 논을 사면 그냥 인정해주면 될 것이다. 부러우면 나도 사촌처럼 논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다.

요즘은 집도 학교도 아이들에게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보다는 경쟁을 가르친다. 정치권도 그저 상대방의 잘못에 기대거나 상대방을 깎아내려서 내가 잘되기를 바란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깎아내린다고 내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시기 질투를 나의 발전의 디딤돌로 삼는다면, 그 마음으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상대방도 나도 더 나은 위치에서 서로 웃으면서 함께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그저 미워하고 깎아내리려고 한다면 상대방도 나도 현재보다도 못한 위치에서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우고 있을 것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