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35)]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겨울나무는 해탈을 꿈꾸는 허허벌판의 스님 같다. 나뭇잎을 다 떨구고 수액을 땅 속으로 깊이 감춘, 오롯하고 명징한 정신 하나로 서 있는 겨울나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문패도 떼어 버렸다. 인생은 잠시 들렀다가 가는 길일 뿐.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들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 있는/ 흠 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 마음도 떼어 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겨울나무’(장석주)
이양하 전 서울대 교수는 수필 ‘나무’에서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에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겨울나무(이원수)
이 동시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하는 명곡이다. 나무를 불교 용어로 바꾸면 그 발음이 ‘나무(南無)’가 된다. 부처나 불·법·승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말장난 같지만 겨울나무는 해탈에 이른 구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양하 교수도 죽어서 나무에 귀의하고 싶다고 했다.
겨울나무는 일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과 대한 사이에 저만의 월동 비법을 갖고 있다. 우선 광합성과 양분 흡수가 어려운 이 시기에는 미리 꽃눈을 만들어 놓는다. 봄에 자랄 잎, 줄기, 꽃이 될 조직을 눈(芽)에 담아 엄동설한을 이겨내는 것이다. 겨울나무는 또 몸체가 쉽게 얼지 않도록 물의 양을 대폭 줄인다. 나무 속의 당류는 어는점을 낮추는 부동액 역할을 한다.
고목(枯木)과 나목(裸木)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고목과 달리 나목은 봄을 내장하고 있다. 신춘은 아직 멀고 눈쌓인 응달은 여전히 춥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