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자기소개서를 읽는 시간
며칠 전 오랜 벗의 부탁으로 그의 자녀가 쓴 대학입시 지원용 자기소개서 초안을 읽어보고 소견을 전해줄 기회가 있었다. 과문한 탓에 부탁을 받고서야 이맘때인 9월에 대학 수시전형 원서접수가 진행된다는 것과, 자기소개서가 심사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진학이나 입사를 목적으로 하는 지원 서류는 내용이 크게 다를 수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잘 쓰기가 어렵다. 전국의 수험생들이 쓴 지원서들 속에서 남보다 뛰어남을 드러내되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각종 제약 조건들까지 지켜가며 항목 당 1500자 혹은 800자의 답안을 작성하는 일은 읽고 쓰는 게 직업인 사람에게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더욱이 검수를 부탁 받은 글의 평가 결과에 따라 한 학생의 장래가 바뀔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가능하면 이 부탁은 피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런 부담을 안고 읽기 시작한 원고에서 발견한 뜻밖의 반짝이는 기재(器才)는, 그래서 많이 놀라웠다. 내 경우 학부에서 형사정책학을 공부하던 중 비로소 배울 수 있었던 미국의 연구 사례를 인문계 고등학생이 교과과정을 통해 이미 알고 있고, 이 사례에서 깨닫게 된 이론을 나름의 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 적용하고, 구체적 실험 집단에 집중해 갈등 해결이라는 방법론을 도출하는 데 자신이 지망하는 전공 지식이 의미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는 논리의 대담성에 설득 당하면서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즐거웠다. 지원서를 읽게 될 심사자들도 부디 같은 마음이기를 바란다.
입시 전형이 진행 중인 관계로 해당 내용을 직접 인용할 수 없어 아쉬우나, 글을 읽으며 연상된 미국 판례가 하나 있어 대신 소개하고자 한다. 이 판례는 60년 전 만들어진 선례가 선택했던 방법, 즉,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본을 법원이 지적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명목성만을 선언적으로 확인하고, 재판의 전제가 된 규범과 현실 간의 괴리에서 생겨나는 피해는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들이 감수할 것을 결정하는 대신 시대 전체의 극적인 방향전환을 정면으로 요구한 간결하고 대담한 사례이다.
세상의 많은 부조리와 모순 가운데 미국 사회에 특유한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인종차별의 문제일 것이다. 한때 물건처럼 사고 팔리던 노예의 후손들과 그들을 사고 팔았던 상인들과 소유주들의 후손들이 한 나라에서 어울려 사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노예의 후손들도 자유인의 후손들도 헌법상 명시된 평등권의 동등한 향유자임을 확인해 주어야만 하는 구체적인 사안 앞에서, 서로 다른 인종들이 학교를 가고, 버스를 타고, 극장에 가고 예배당에 가는 그 모든 방법의 옳고 그름을 정해야만 하는 판결의 순간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두 번의 서로 다른 결정을 했다. 1896년에 있었던 Plessy v. Ferguson 사건에서 분리평등 원칙(Doctrine of Separate but equal)에 근거해 내린 합헌 판결과, 1954년 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oeka 사건에서 확인한 분리평등 원칙에 대한 재평가, 즉 공공교육에 있어 인종별로 받게 되는 교육의 질이 극단적으로 달라도 학교에서 교육받는 것은 동일하니 인종 간 분리된 학교교육을 시행해도 평등한 것이라는 기존의 원칙은 존재할 수 없으며, 분리된 학교 시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으므로 폐기되어야 하고, 60년간 미국 사회를 다스리던 분리 정책은 연방수정헌법 제5조와 제14조에 반하여 위헌이라는 판결이 그것이다. 평등권의 법적 보장에 대한 이 기념비적 판결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소수자 우대정책과 백인에 대한 역차별 문제에 대한 법적 판단에 있어 끊임없이 소환되면서 판결로서의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자기소개서의 주인공을 만나 진심으로 감탄하며 읽었다는 말을 전하자, 이야기 나누는 내내 피로하고 그늘졌던 얼굴에서 비로소 나이에 어울리는 생기 있고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많은 첨삭을 기대한 학생에게, 수려한 문구보다 돋보이는 매력이 많은 글이니 욕심을 덜고 질문에 집중해 남은 문항의 여백을 완성하라는 나의 답신이 부디 무성의하거나 실망스럽지 않았기를 바란다. 남은 수험 기간을 완주하고 지망하는 대학의 자랑스러운 신입생이 되어 반가이 다시 만나게 되기를 응원하고 충심으로 기원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