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칼럼]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정치

2022-10-04     경상일보

조선 후기의 왕 정조는 사회통합과 서민의 생활 향상을 위한 수많은 개혁정책을 단행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노론 벽파 세력과 부딪히면서 정치적 격랑을 헤쳐나간 인간적 고뇌 또한 많은 인물이다. 그는 조정의 야당 격인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와 수 백통의 밀서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개혁정책을 관철시켜 나갔다.

‘ 밤에 잠을 자다가 처마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서 농사를 망칠까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늦게서야 비가 그치니 기뻐 날뛸 지경이다. 간밤에 잘 잤는가.’ 등의 다정다감한 내용이 있는 반면에 ‘참으로 호로자식이라 하겠다.’ ‘어떤 놈들이기에 주둥이를 놀리는가.’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 등의 비속어를 신하들에게 구사하고 있다. 심환지는 끝까지 서신을 공개하지 않아 정치도의를 지켰지만, 보는 즉시 소각하라는 어명은 어기고 말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신하들을 욕해놓고는 그 옆에 ‘呵呵呵(가가가)’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요즘 ‘ㅋㅋㅋ’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넉넉하면서도 소탈한 심성의 소유자임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탈권위적이면서 소탈하여 서민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노무현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비속어 사용을 서슴지 않았다. “군대 가서 썩는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 등의 표현으로 논란을 빚기도 하였지만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만드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는 등의 심금을 울리는 명언은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최고지도자들의 정적에 대한 속된 표현의 예는 수없이 많다. 늘 무거운 책임의 중압감과 정적들과의 전투 모드에 시달리는 인간의 고달픔과 고뇌의 배설 정도로 보아 해프닝으로 치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적 수사에 능숙하지 못한 윤대통령이 비속어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번은 자당 대표를 ‘내부총질’ 하는 사람으로 표현한 문자 메시지가 누출되어 ‘양두구육’이라는 소리를 듣는 등 여당 분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번에는 뉴욕에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하고 측근 참모에 둘러싸여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약속한 재원에 대한 국회 승인의 어려움을 비속어가 섞인 농담으로 내뱉었다. 순방 일정을 마친 대통령에게 따지고 물어야 할 일이 산적함에도 이를 둘러싼 정쟁이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물론 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품격 없는 언어 구사는 부적절하고 자제돼야 함은 마땅하다. 주의를 기울여 몇 번을 들어봐도 심한 소음으로 속어에 가까운 한 두 마디가 들릴 뿐 정확한 문장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상파 방송사에서 이를 가장 악의적인 방향으로 해석하여 자막까지 붙여 보도하고 외신에까지 전파한 것은 불순한 의도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가령 방송국의 해석대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말이었다 하여도 바이든 또한 국회에 대한 동병상련의 공감으로 웃어넘길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두고 동맹 관계를 헤치는 외교 참사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바이든에 대한 인격모독이다. 방송인 김제동이 군 복무 시절 4성 장군의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주머니’라고 불렀다가 영창에 들어갔고 “다시는 아주머니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를 3회 복창하고 나왔다고 방송했다. 국회 국방위 한 의원이 군 이미지 실추하였다고 증인으로 신청하자 김제동은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고 받아쳐서 국회를 머쓱하게 하였다. 문제는 대통령실의 대응이다. 대국회 관계의 어려움을 측근에게 토로한 농담임을 당당히 말하고, 속된 표현은 앞으로 유의하겠다고 밝히면 될 일을 ‘날리면’ 운운하는 바람에 온 국민이 ‘바이든’과 ‘날리면’을 두고 청각 테스트에 빠지고 말았다.

언론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언론자유의 전제 조건이다. 언론이 정치 진영에 가담하거나, 지배 권력의 치마폭으로 스스로 기어들어 갈 때 민주주의는 질식한다. 여기다 유투브 방송까지 가세하여 국민들의 확증편향을 부추기고 있음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려워져만 가는 경제 상황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국민들은 유치한 정쟁에 육두문자가 목까지 차오르지만 참고 있는 가을이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