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정치의 각성
우리나라 최고 재벌 총수가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벌써 27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 기업과 정치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기업들 중에는 2류를 벗어나 세계 일류로 치고 나간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정치는 어떤가? 4류는커녕 등급을 부여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집권여당은 권력 다툼으로, 거대 야당은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입법 폭주로 국민들을 피곤하고 불편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의 장에서 거론되는 담론은 거의 주간지 가십(gossip)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토론과 타협은 없고 정쟁과 대립만 존재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정치의 장은 의회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바와 같이, 법의 지배 아래 민주정체를 유지하고 국민들에게 ‘훌륭한 삶’을 제공하는 정책과 법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과거에는 이른바 ‘행정국가화 현상’으로 인해 대통령이 주도하는 행정부가 정치과정을 지배하고 입법부는 통법부(通法府)로 불리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국회가 행정부를 압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행정이 아니라 ‘국회의 정치’가 되었다. 우리의 미래가 국회의 역량과 수준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한국사회과학자료원에서 20여 년 전부터 실시해 온 신뢰도조사에 따르면 국회는 일관되게 꼴찌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기업이나 다른 정부기관이 이런 결과를 얻었다면 일찌감치 문을 닫았거나 폐지되었을 것이다. 국회가 입법권을 활용하여 언론개혁, 사업개혁 등을 주도하고 있지만, 정작 개혁과 혁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국회 자신이다.
정치의 격이 떨어지고 국민과 유리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 개개인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고 이를 방조하는 제도적 미비점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이다. 미래지향적 담론이나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정책제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소수 권력자 그룹과의 친소관계나 충성도에 따라 공천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원들의 주된 관심사는 입법활동이나 정책제안 보다는 권력자를 위한 충성도 경쟁이나 줄서기에 집중된다. 특히 최근 우리 정치에 등장한 팬덤정치라는 늪에 빠져 거의 조폭 수준의 과잉동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말로는 헌법기관이라고 하면서, 민생은 안중에 없고 계파의 보스만 챙기고 있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공천제를 손봐야한다. 사실 우리 국회의 초선의원 비율은 평균 5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매번 절반정도가 새로운 국회의원으로 채워지는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진 정치인들이 국회에 입성한다고 해도 역량이나 신뢰도는 그대로이다. 권력자가 주도하는 기존 공천제도는 역량 있는 인물들의 발굴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선거기간만 반짝 노력하여 한 번 당선되기만 하면 무조건 4년이 보장되므로 긴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지양하기 위해 의원소환제 등의 도입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세계 초일류 수준인 국회의원들의 특권도 정리되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범죄행위에 대한 방패막이로 사용되는 불체포특권,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 특활비, 공공교통수단 무료 이용 등 과도한 특권들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진정한 시민의 대표라면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고 평범한 시민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동안 당연시 되어 오던 것들이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통해 문명이 발전하고 시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 역사의 순리이다. 그 중에서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바로 우리의 국회다. 사회는 진보하는데 정치는 제자리이거나 후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그대로 용납될 수는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준다.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시민들이 나설 것이다. ‘정치’의 각성을 촉구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