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75)]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보문들판 건너 진평왕릉을 바라본다. 햇볕이 성한 금왕지절, 넓은 들판은 황금빛으로 익어 가고 있다. 툭 트인 공간이 주는 무량한 기운이 좋다. 멀리 소나무 사이로 선덕여왕과 선화공주의 아버지, 진평왕릉 봉분이 살짝 살짝 보인다.
지난여름은 뜨거웠다. 그 열기를 잠재우려고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낭산, 도리천 가는 길’을 드나들었다. 박물관 벽에 붙은 대형 포스터도 시선을 끌었다. 선덕여왕릉을 배경으로 낭산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은 솔바람 한줄기 불어오듯 청량함을 풍겼다.
전시의 백미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였다. 발견 80년 만에 처음으로 일괄전시되어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국보로 지정된 두 점의 순금불상을 비롯하여 금제 은제 내함, 굽다리 잔, 유리 팔찌 및 각종 유리구슬 등은 8세기 신라 불교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특히 두 점의 불상은 통일신라 금속공예의 걸작이다. 크기는 작지만 균형 잡힌 몸매에 광배까지 갖추어 위엄이 서려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 미소 띤 얼굴은 볼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금동제 사리함 뚜껑 안쪽에는 장문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에 따르면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효소왕이 부친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692년 건립하였다. 효소왕이 승하하자 706년 성덕왕이 추가로 불사리와 순금제 아미타상 1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봉안했다는 내용이다. 전시된 사리장엄구 일체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보듯 고요했다. 마음을 밝히는 거울이었다.
언젠가 아이들과 답사를 왔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녀석이 그랬다. 국보인 삼층석탑이 우주로 가는 로켓 같다고. 그래서일까 금동제 사리함이 안치되었던 이층 지붕돌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먼 신라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다.
어슬어슬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삼층석탑은 큰 몸을 조금씩 지워간다. 낭산 기슭에서 월명사의 피리소리 들리는 듯 하여 귀를 기울인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