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74)]초원으로 간 페르시아 문명, 히바

2022-10-14     경상일보

이란에서 동쪽으로 키질쿰 사막을 건너면 광활한 초원지대에 닿는다. 아무다리아와 시르다리아 강 사이에 쌓인 충적토가 만든 비옥한 초원이다. 옛날에는 옥수스(Oxus) 강이라 불렀던 아무다리아(Amu Darya)강의 서쪽에는 거대한 히바(Xiva) 오아시스 도시가 만들어졌다. 카라반들은 이 도시를 거점으로 삼아 인도를 향해, 혹은 중국을 향해 장삿길을 떠났다. 이란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거점도시로 번성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우즈베키스탄의 지방 도시에 불과하나, 기원전에는 페르시아인들이 만든 호라즘(Choresmia) 왕국의 중심지였다.

천혜의 조건은 오히려 침탈의 유혹을 불러들였다. 힘이 있는 민족들에게 수시로 정복당하며, 파괴와 재건을 거듭해야 했다. 페르시아인들이 개척한 도시는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했고, 아랍인들이 발전시킨 이슬람 문명은 몽골인들이 파괴했다. 티무르가 재건한 도시를 우즈벡인들이 물려받게 되었다. 수많은 민족과 문명이 이 땅을 거쳐 갔지만 핵심적인 기질은 우세한 유전인자처럼 살아남았다. 바로 페르시아와 이슬람 문명이다. 히바는 잃어버린 페르시아 시대의 호라즘 문명과 중앙아시아로 전개되는 이슬람 문명의 자취를 값진 유산으로 남겨 두었다.

이찬칼라(Itchan Kala)라고 불리는 히바의 성채는 감탄스러울 만큼 위풍당당하다. 비록 황토 벽돌로 쌓은 조적식 성채지만 남북 650m, 동서 400m 규모의 장방형 성곽이고, 성벽 높이가 10m에 달한다. 성곽의 위용은 반 원통형 치성이 연출하는 육중한 매스감이다. 30m 간격으로 반원형 망루를 설치하여 치성과 버팀벽(buttress)의 역할을 겸비했다, 곡선과 흙벽돌이 주는 부드러운 실루엣과 질감이 여성적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전투를 위한 장치라기보다 아라비안나이트같은 동화 장면을 연상시킨다.

처음 성벽을 쌓은 시기는 기원전 4~5세기로 알려진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17세기 이후의 것이다. 옹성처럼 튀어나온 성문 양옆에는 미나레트 형식의 망루가 지키고 있다. 당당하면서도 부드럽다. 이슬람 중세 성곽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성문들 또한 대부분 19세기에 중건된 것들이다. 그러나 성안에 들어서면 근대적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슬람 도시로서 중세의 시대적 형식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치형 성문을 통해 보이는 성안 풍경은 스타워스(Star Wars)의 외계 도시에 들어선 듯 경이로운 이슬람 도시의 경관이 나타난다. 간선로를 따라 황토벽의 여러 건물이 줄지어 가로변을 형성하며, 첨탑과 채색 돔들이 동화 속 풍경을 재현한다. 누런 황토벽의 부드러운 면이 채색 타일과 장식적 대비를 이루며 절묘한 생동감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모자이크 채색 타일로 마감된 미나레트는 비록 굴뚝 형태지만, 그 색채감과 우아한 곡선은 공예품에 가깝다.

서문 근처에서 다시 성곽으로 둘러싼 궁궐을 만난다. 궁궐이 도시에 한쪽 구석에 치우쳐 있는 모습은 몹시 생경스럽다. 권위적인 궁궐 배치는 도시의 중심부를 차지하여 중심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권위의 상징성보다는 요새로서의 기능을 더 중요하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 있는 또 하나의 성처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지 않았다면 궁궐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쿠니야아크(Kunya ark)라고 부르는 이 궁성은 17~19세기에 건설되었는데, 요새인 동시에 궁전, 법정, 제분소, 모스크, 군사훈련 및 사열 등 다기능의 시설을 내포하고 있는 복합 건물군이다. 도시 속의 도시인 셈이다. 궁성의 동문을 들어서면 커다란 내정이 있고 한편에 우물이 남아있다. 두레박을 올려보니 맑고 시원한 물이 담겨있다.

이 거대한 내정은 군대 사열이나 군사훈련, 또는 국가적인 의식이 행해졌던 곳으로서 한편에는 사열대 역할을 했던 베란다가 설치되어 있다. 정전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2층까지 치솟는 가느다란 나무 기둥은 권위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날씬하다. 시원하게 치솟는 나무 기둥과 보석처럼 정교한 목각 장식, 파뿌리형 밑둥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형식이다. 이 기둥으로서 페르시아 고급건축에서 사용된 탈라(talar) 형식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궁궐 뒤편에 숨어있는 침전은 의외로 수수하다. 침전 역시 장방형 중정을 둘러싸는 ㅁ자형 건물이다. 중정에는 원형 플랫폼을 두었는데 여름에 유르트 같은 천막을 설치했다고 한다. 내정 주변으로 침실을 배치했다는 점은 이슬람 신학교(마드라사)나 대상숙소(카라반 사라이)와 유사하다. 다만 남쪽 변에 베란다(talar)를 둔 것이 고급건축임을 표시한다.

건물은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1층은 개구부가 거의 없는 대단히 폐쇄적인 입면으로 은폐되어 있으며, 2층에는 중간 중간에 베란다가 설치되었다. 침실마다 외부공간으로서 베란다가 딸려 있는 것이다. 2층의 공간은 비빈(妃嬪)들의 영역이었을 듯하다. 내전의 모습은 의외로 단순하다 첨두형 아치의 벽감 속에 소박한 옥좌 하나만 덩그마니 남아있을 뿐이다. 벽면에 감실형 찬장을 두고 그릇을 전시한 것이 장식의 전부이다.

특이한 것은 기둥의 모습이다. 기둥 뿌리부분이 파 뿌리처럼 굵어지다가 주춧돌과 만나는 부분에서는 갑자기 가늘어지는 형태를 갖는다. 기둥뿌리에 금속제 철심을 박아 주춧돌과 연결했다. 기둥머리는 야자수 형태로 장식하고, 기둥의 밑둥은 화려한 화초 문양으로 조각했다. 이토록 요염한 기둥이 또 있을까. 이러한 기둥은 쥬마모스크(Dzhuma mosque)에서도 볼 수 있다. 200여개가 넘는 파뿌리형 기둥이 페르세폴리스의 백주실(百柱室)을 연상시킨다. 그 신비로운 공간에 페르시아 문명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