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진실과 허구 사이 주체적 상상의 확장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의 저서 <호두껍질 속 우주>란 책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연환경에 의해 생물학적으로 진화하는 존재가 아닌 기계환경에 의해 기술적으로 진화하는 존재로서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과거 인간은 매해 약 1비트씩 뇌의 복잡성을 증대시키며 자연 진화를 했지만 현 시대에는 매일 쏟아지는 수천만 비트의 디지털 정보의 압력에 의해 진화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압력은 인간 감각의 한계를 확장시키며 대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관용성을 증대시킨다.
또한, 포스트 디지털시대로 진입하면서 인류는 거대한 신경망과도 같은 유기적 공동체의 종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 지구적 인터넷 망으로 서로 연결된 인간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독립적 사고와 행동이 아닌 점차 관계적 사고와 행동에 의지하게 된다. 인간의 단면적 감응체계는 다면적 감응체계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어떠한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우리가 감응하며 판단하는 잣대는 결정론적이었고 진실과 허구가 명확했다. 또한, 개인의 주체적 결정보다는 소위 전문가 집단의 객관적 판단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포스트 디지털시대에는 어떠한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진실과 허구를 해석하는 기준의 관용도는 인간 개개인의 주체적 상상력과 함께 확장되고 있다. 온라인의 가상과 오프라인의 현실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며 인간 스스로 결정하는 진실과 허구의 이분법적 경계는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아날로그시대와 디지털시대의 초상인물 사진은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과거, 사진과 영상은 곧 현실의 거울이었고 포트레이트는 피사체인 그 사람의 얼굴을 진솔하게 반영한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의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인 셀카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 사이에 있는 상상의 영역에 있다. 즉 진실과 허구 둘 사이에 있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의 셀카는 찍는 생산자 자신이나 그것을 보는 수용자도 그 포트레이트가 실제 얼굴과 완전 똑같을 것이라 기대하지도, 실제 얼굴과 완전히 다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다 넓은 상상적 관용도를 가지고 진짜와 가짜 둘 사이에 펼쳐진 스펙트럼 어딘가에 있을 포트레이트 사진을 용인한다.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주체적 상상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은 진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들며 주체적 상상력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픽션과 논픽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사이의 영역에서 승자의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우리 모두의 히스토리스(histories)를 써나가며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관용도를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완벽하게 공유된 포스트 디지털시대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과 접촉하며 소통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다면적으로 확장되며 하이퍼 멀티플 페르소나(hyper multiple persona), 하이퍼 소시어빌러티(hyper sociability)가 되어가고 있고 이와 함께 우리는 가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상상의 영역에서 부유하고 있다. 우리는 상호 간에 서로의 정보와 지식, 심지어 감성을 무의식적으로 교류하며 세상을 보다 넓은 관용도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서술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변화의 미래에 인간 각각의 주체적 판단과 결정들이 대립이 아닌 상호 교류와 호혜의 민주적 합일의 세상으로 발전시키는 것 또한 우리의 과제이며 몫이 될 것이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