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제의 독서공방]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너를

2022-10-24     경상일보

크눌프! 직업도 없이 유랑하는 그다. 그럼에도 그는 신사적이며 철학적이고 사유를 즐기며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그는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며 풍성한 삶을 누린다.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나 결코 소유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도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가시 하나를 품고 살아간다.

작품 속 크눌프가 만나는 사람들의 직업은 무두장이, 선반공, 석공, 의사 등이다.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현실적인 사람들인 반면, 크눌프는 직장과 가정생활에 얽매지이 않고 본성이 원하는 대로 산다. 이런 일반 사람들과 크눌프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작가 헤세가 어느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 ‘만약 크눌프처럼 재능 있고 영감이 풍부한 사람이 그의 세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크눌프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목적이 분명한 삶이 아니어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으로 나름 의미 있는 삶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크눌프가 죽음 앞에서 살아온 시간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질문할 때 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함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너는 나이고 나는 너라는 하나의 마음이라면 참 의미 있는 인생으로 서로에게 기억될 것이다. 설성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