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단풍(丹楓)과 기후변화
예년과 다르진 않지만,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고 주말 길거리 옷차림새도 형형색색 두꺼운 패딩으로 장식되고 있다. 함께 본격적인 단풍철도 시작되고 있어 전국의 산들이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있다. 단풍은 날씨의 변화로 나뭇잎에 생리적 변화가 급작스레 일어나 녹색 잎이 붉게, 노랗게 또는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일컫는데 해마다 이즈음이면 내장산이나 설악산의 단풍은 색깔이 선명하여 아름답기 그지없다.
단풍은 식물의 잎에 함유된 색소들의 분해 시기가 달라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식물의 잎에는 엽록소 이외에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 등의 보조색소가 있는데, 엽록소와 함께 잎 속에서 합성되는 노란색 카로티노이드는 녹색의 엽록소에 가려서 사람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은 그 성분이 세포 속에 녹아 있다가 늦여름부터 새롭게 생성되어 잎에 축적이 된다.
나무는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잎을 물들이고 말려서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나무 속에 수분이 많으면 한겨울에 얼어 죽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은 잎으로 공급되던 영양분과 수분을 통제하게 되는데, 그 결과 합성되지 않고 남아있던 엽록소는 햇빛에 분해되어 녹색이 서서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분해 속도가 느린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은 일시적으로 본래 색인 노란색과 붉은색을 띠다가 이마저도 분해되면 나머지 쉽게 분해되지 않는 타닌 색소로 인해 나뭇잎은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건조하고 일조량이 풍부한 날씨가 지속하는 가을이 되면 엽록소를 빨리 분해하고, 식물의 수액에 당분 농도를 증가시켜 안토시아닌을 많이 생성하기에 단풍이 더욱 아름답게 물든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나무가 안토시아닌 색소를 만드는 것은 추위나 자외선, 가뭄, 각종 세균 등의 환경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란 설도 있다. 나뭇잎이 안토시아닌을 만듦으로써 좀 더 오래 나무에 붙어 있을 수 있고, 이는 나무가 영양분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도록 해 다음 해 봄 생장 시기에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보는 것이다. 단풍에 대한 특이한 연구결과도 있다. 뉴욕 콜게이트 대학 연구진은 ‘단풍의 붉은색은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독이자 방어막’이라는 이론을 제기했는데, 붉은 단풍의 색소는 다른 성분이 파괴된 뒤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성하는 일종의 독이자 방어막이라는 것이다. 가을에 붉은 단풍잎이 떨어지면 안토시아닌 성분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다른 수종의 생장을 막는 것이라는 이론인데, 단풍의 그 현란한 아름다움 속에는 이처럼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한 숨겨진 이면도 있음직하다.
이러한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매년 점차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월악산의 경우 1990년대 평균 단풍 시작일은 10월9일이었으나 2010년대 평균 단풍 시작일은 10월11일로 2일이나 늦어졌다. 가을 시작일이 늦어지면서 단풍 시기도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중반부에 위치하는 지역의 단풍 드는 시기도 약 4일가량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온변화에 대한 단풍 시작일은 단풍나무에서는 기온 1도 상승에 약 4일, 은행나무에서는 약 5.7일씩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2099년까지 기후변화를 예측해 모델링한 결과는, 지구온난화가 느리게 진행될 경우 현재보다 단풍 드는 시기가 약 1주일, 빠르게 진행될 경우 약 3주 늦어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짧아지는 가을과 더불어 단풍철이 순식간으로 지날 태세이다. 바쁜 일상에 휙 지나 가버리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잡으려 애쓰기보다 기후변화를 먼저 잡아야겠다.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