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75)]서리맞은 단풍, 꽃보다 붉네

2022-10-25     이재명 기자

멀리 늦가을 산에 오르니 돌길 비껴있고(遠上寒山石徑斜)/ 흰 구름 이는 곳에 몇 채의 인가(白雲生處有人家)/ 수레를 멈추고 앉아 늦은 단풍을 구경하나니(停車坐愛楓林晩)/ 서리 맞은 단풍잎 이월의 꽃보다 더 붉네(霜葉紅於二月花) -‘산행(山行)’ 전문(두목)



그제는 상강(霜降)이었다. 서리 상(霜)에 내릴 강(降),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절기가 바로 상강이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 무렵이면 온 산은 붉게 타오른다. 두목은 시 ‘산행(山行)’ 마지막 구절에서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라고 읊었다. 서리 맞은 단풍잎이 이월 꽃보다 아름답다고.

실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꽃보다는 단풍을 더 선호한다. 대중 강연으로 잘 알려진 법륜 스님은 “곱게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며 “꽃은 떨어지면 지저분하게 변색되지만 단풍은 길을 융단같이 덮는다”고 말했다. 두목의 시 ‘산행(山行)’은 1995년 11월 서울을 방문한 정쩌민(江澤民)이 읊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날 장 주석은 청와대 경내에서 북악산의 단풍을 보며 ‘상엽홍어이월화’라는 구절을 읊었다고 한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를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단풍 드는 날’ 전문(도종환)


도종환 시인의 시 ‘단풍 드는 날’의 중심 단어는 ‘방하착(放下着)’이다. 방하착이란 불교에서 쓰는 용어로 모든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욕망과 집착을 모두 내려놓음으로써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의미다. 유튜브 명상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려놓아라. 다 내려놓아라. 모두 다 내려놓아라. 그러면 편안해진다….”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우리도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 비로소 가장 황홀한 빛깔로 물들 수 있다. 나무가 그 푸르렀던 잎들을 미련없이 내려 놓으면 비로소 지혜로운 나무가 되듯이.

가을은 낙엽 휘날리는 10월 끝자락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했던가. 떨어진 모든 잎은 다시 뿌리로 돌아간다. 버리기로 하면 다시 얻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