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우유급식의 추억

2022-10-26     경상일보

“우유는 완전식품이 아니다. 밥 대신 먹을 수 있나? 야식거리인가? 술안주가 되는가? 옆 사람이 한 입만 달라고 매달리나? 우유가 아니라 라면이 완전식품이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더 건강한 사람은? 우유배달부.” “세종대왕이 마시는 우유는? 아야어여오요우유.” 우유에 얽힌 이야기가 많을 정도로 우리는 우유를 많이 접해왔다. 학창시절 우유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자.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많이 도와준 나라가 미국이다. 구호물품이 미군을 통해서 들어왔고, 각 학교에서 학생에게 배부됐다. 그 중 하나가 분유였다. 당시 어린이 상당수가 교사와 미군이 퍼주는 분유를 받았다. 1950년대, 1960년대 부유층의 상징 중 하나는 대문에 걸려진 우유배달 주머니였다.

1970년대에 많은 우유회사가 설립됐다. 강원 대관령, 전북 임실 등 전국 단위로 목장이 커졌고, ‘성장기 필수 영양소’ 문구가 흑백 TV에 나왔다. 특히 삼각비닐 커피우유는 목욕탕에서 인기가 좋았다. 온탕에 둥둥 떠다니는 삼각우유는 모든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풍족하지 못한 시절이라 우유갑은 딱지, 축구공 대용품이었다.

1980년대, 1990년대에는 학교 우유급식이 정착됐다. 우유당번은 노랑 또는 초록 플라스틱 우유상자를 교실로 가져왔는데, 흰 우유는 남아돌고, 딸기·초코우유는 모자라곤 했다. 출생률 증가로 시장이 커지자 회사마다 광고 노래가 있을 정도로 우유 경쟁이 치열했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상쾌한 아침이 좋아요~, 워워~ 등등 온갖 광고송이 컬러 TV로 전송됐고, 밤·콩·고구마·깨 등 다양한 곡물우유가 출시됐다. 목욕탕에서 바나나우유가 커피우유의 인기를 밀어냈다.

2000년대 들어서 흰 우유를 안 먹는 학생이 많이 부각됐다. 버리지 말라며 일부 학교는 우유갑을 반납 받을 때 이름을 적어서 내라고 시켰다. 경쾌한 우유송, 우유 먹으면 키 큰다는 문구가 우유소비를 장려했다. 흰 우유를 초코우유로 만들어주는 초코가루는 초등학생에게 구세주다. 친구에게 초코가루를 나눠줄 정도면 친한 사이가 맞다. 이 초코가루로 싸움이 벌어져서 증거물로 제출된 사례도 있었다. “그러니까 흰 우유를 먹기 싫어서 주먹을 휘둘렀다 이거네?”

우유는 더 이상 고급음식이 아닐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학부모들은 요즘 많은 학교가 우유급식을 안한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그래도 복지 차원에서 저소득층 가정에 지금도 우유가 배달되고 있다. 가방 속 우유가 터지면 학생이 울고, 교실 바닥에 우유가 쏟아지면 교사가 화 내는 현상도 여전하다. ‘우유갑’이 표준어이지만 ‘우유곽’으로 더 많이 부르는 현실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김경모 대송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