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CEO포럼]119구급차는 비응급환자의 무료택시가 아니다

2022-10-27     경상일보

응급실에 근무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119구급 대원들이 이송해온 환자들을 진료하게 된다. 하루에 적게는 서너건, 많게는 스무건 가량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면 대부분은 ‘위급한 환자들이 정말 많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절반 이상의 환자들은 사실상 응급환자가 아니다. 이런 상황이 거듭될수록 의사로서 허탈한 마음이 들고, 도리어 119대원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할 때가 많다. 소방력이 이렇게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119구급차는 무료로 이송해주는 택시가 아니다.

응급환자란,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말한다.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는 크게 소방서에 소속된 ‘119 구급차’와 민간업체가 운용하는 사설 ‘129 구급차’로 나뉜다. 사설 구급차는 환자 이송을 위해 등록된 택시와 같은 교통수단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설 구급차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이송 요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응급실 방문을 위해서는 119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119에 신고를 하면 종합상황실에서 해당 지역으로 내용을 전달해 출동을 하게 된다. 다른 출동으로 해당 지역의 구급차가 부재중이라면? 더 먼 곳의 구급차가 출동하게 된다. 비응급환자로 인해 응급환자가 오랜시간 이송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0조(구조구급요청의 거절)는 비응급 신고에 대해 이송을 거절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비응급을 명시하고 있는 법적 자료들이 있고, 지도의사의 의견을 구하지만, 현장에 대면한 구급대원의 환자 평가는 병원에서보다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거절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과실 및 사고를 대비해 응급실까지 이송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울산에서만 한 달에 3000명 이상의 환자가 응급실로 이송된다. 구체적인 통계 자료에도 이송된 질병 유형만 구별이 될 뿐, 비응급 환자가 이송됐는지는 집계하지 않는다. 단순히 건수가 많을수록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비응급 환자의 이송으로 순서가 밀려 정작 응급환자의 이송이 늦을 때면 참으로 안타깝다. 불필요한 소방력의 낭비를 줄이고, 꼭 필요한 환자에게 최선의 구급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모두의 배려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본인의 신체적 불편함이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응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19구급차는 ‘응급환자’를 위한 수단이고, 응급실은 ‘응급진료’를 위한 공간이다. 이런 환자들과 현 시스템과의 견해 차이가 ‘진짜’ 응급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최선의 응급의료체계를 위한 대안을 생각해 본다면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현재의 수요는 유지하되, 공급을 늘리면 된다. 충분한 인력과 재원을 확보한다면 자연스레 모두에게 최선의 구급활동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당장 2배, 3배 늘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방법은 당연히 불필요한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환자에게 이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만, 환자가 직접 중증도를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고의로 경제적인 이유, 편의성 등을 위해 119를 이용하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항목이 있지만, 허위신고로 제한되고 있다. 그렇다고 추후에 리뷰를 통해 비응급 환자를 가려내 몽땅 과태료를 매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선은 구급대원이 판단해 적절히 이송거절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녹화, 차트기록은 물론 충분한 설명의 의무와 환자의 동의, 그리고 구급대원의 법적 책임과 그에 대한 보호가 적절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외국의 사례들과 비교해 보아도 우리나라만큼 의료체계, 응급의료체계가 환자들을 위하는 나라는 드물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조금만 더 가진다면 더 좋은 응급의료체계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민 외과전문의 본보 차세대CEO아카데미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