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지엽적 문제로 본질을 흐리는 논법은 흔히 위기탈출법으로 알려져 있다. 본질은 여기에 있는데 사소한 것을 구실삼아 주의를 저쪽으로 돌려 핵심을 흐리는 수법이다. ‘이번 결정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라는 지적에 갑자기 ‘당신이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는가. 당신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사실상 논점 이탈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 위기탈출법이지만 비논리적일 뿐 아니라 저열한 수법이다.
뉴욕을 방문했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만난 직후 사적 공간에서 한 말을 놓고 ‘미국 대통령과 의회를 폄훼하였다’거나 ‘우리 국회를 모욕하였다’는 등 비속어 논란이 있었다. 공인의 언사는 정제되어야 하지만 사적 영역에서 한 말이 심지어 왜곡된 형태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공방을 벌여야 할 소재는 아닐 것이다. 앞뒤 맥락을 잘라버리고 의도한 대로 편집하거나 한마디 실수라도 하면 이를 포착해 보도하면서 희희낙락하는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엽적인 표현을 침소봉대해 공격하는 것은 흠집내기 또는 트집잡기나 다름없다.
본질은 딴 데 있는데 엉뚱한 이유를 들어 시비를 유발해 다투는 것은 우매한 인간들이 하는 짓이다. 과거 수사 경험에 의하면 이권이나 이익의 획득을 추구하거나 다른 의도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창피를 주었다. 많이 컸다(고분고분하지 않다는 뜻)’ 등의 이유를 갖다 대면서 시비를 걸어 상대를 제압하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구실찾기이고 말꼬투리잡기인데 조직폭력배들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본질이 아님에도 지엽적인 곁가지 이유로 다투는 일은 일상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차량접촉 사고에서 상대의 난폭운전에 대해 언성이라도 높이면 말투를 꼬투리잡아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실제 경험한 일이다. 예컨대 이면도로에서 대로로 나와 유턴하려고 직각으로 대로를 가로질러 중앙차선으로 들어오는 차량 때문에 접촉사고를 당한 입장에서 상대의 운전이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양반이 운전을 왜 이렇게 해’라고 말하면 가해자는 오히려 ‘이 양반이라니, 왜 반말을 해’라고 하면서 대든다. ‘해요’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그리 큰 잘못인지 몰라도 말투를 꼬투리잡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은 비겁하다. 보험처리하면 될 일을 경찰 신고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요즈음 조직내에서도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나무라기라도 하면 ‘왜 성질내세요’ 라거나 ‘천전히 하면 되지 왜 그러세요’라고 하면서 대드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상대의 지적에 승복하는 것이 자신의 인격적 파국을 뜻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말투나 언성을 이유로 승복하지 않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만드는 상황에서 반말이나 욕설이라도 한마디 추가하면 일은 더욱 꼬인다.
논점과 책임을 엉뚱한 데로 돌려 본질을 흐리는 수법은 속칭 물타기다. 상대의 의도된 수법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핵심을 놓치지 않고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가 말꼬투리잡기나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면 꼬투리잡힌 부분을 정중하게 교정하면서 사안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저열한 공격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자주 목격되는 정치권에서의 꼬투리잡기와 물타기 등에 대해서는 감정을 억누르는 침착함과 실천적 에너지로 충만한 냉정함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사실관계에 더욱 집중하면서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다. 문제투성이인 자신들에 대하여는 경멸할 줄 모르면서 경멸스럽기 그지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구실을 찾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기준 변호사 전 부산지검 검사장